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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Aix에서 사는 동안

두 번의 프랑스 결혼식

 

 

두 번의 프랑스 결혼식


작년 5월 남편 회사동료인 데비가 결혼을 한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스코틀랜드인인 데비는 잘생긴 남편과 귀염둥이 아들을 둔 씩씩한 워킹맘이다.

그녀의 결혼소식을 들은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니, 데비네 커플이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어?”

데비네 가족을 만나면서 당연히 그들도 우리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부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니...아무리 서양사회에 동거커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왠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됐던 그녀의 결혼은 축하할 일이다.   


 

 

 

 

 

 

프랑스에서의 첫 결혼식은 우리를 설레게 했다. 데비부부의 결혼식이 열린 날은 6월 6일.

우리는 아침부터 그녀가 살고 있는 프로방스 마을 시청으로 달려갔다.

시골마을 시청 앞은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연주로 떠들썩했다.

데비부부의 결혼식을 위해 스코틀랜드에서부터 온 친적과 친구들이 보내는 축하연주다.

흥겨운 연주가 한창일 무렵, 신부가 도착했다.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데비는 평소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프랑스인들이 결혼식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시청에서 시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하거나

자신이 다니는 성당에서 신부의 주례로 결혼식을 할 수 있다.

결혼식에는 반드시 증인이 두 명 이상 있어야하고, 결혼식 마지막에는

결혼증명서에 사인을 하는데 이것이 곧 혼인신고다.

 

 

 

 

 

 

 

 

데비의 결혼식은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문화가 만난 현장이었다.

신랑은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킬트를 입었고, 친척들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스코틀랜드인들은 결혼식에 갈 때 킬트를 입는 것이 전통인 것 같다.

킬트는 가문에 따라서 체크무늬가 다르단다. 그러니까 신랑과 똑같은 킬트를 입은

사람들은 그의 형제나 친척인 셈이다.


 

 

 

 

 


 

 

결혼식이 끝나자 신나는 백파이프연주가 계속됐다. 저절로 분위기가 고조된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신랑신부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기념촬영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전문사진가가 찍는 단체사진촬영은 없다.

우리는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는 데비네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피로연분위기는 자유롭고 흥겨웠다. 결혼식이 끝나고 갈비탕 한 그릇 후딱 먹고 나오는

우리의 결혼피로연과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신랑과 신부도 결혼을 몇 번쯤 해 본 사람들처럼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하객들도 모두 즐거운 얼굴들이다. 구면인 남편 회사 동료들과의 대화도 즐겁다.

미국인 이혼녀 낸시는 우리에게 새로 사귄 영계 프랑스남자친구를 수줍게 소개한다.

잘생긴 남친 자랑에 여념이 없는 그녀가 새삼 친근하게 느껴진다.

즐거운 피로연분위기에 휩쓸린 나는 한 잔 두 잔, 샴페인과 와인에 젖어든다.

달콤한 알콜 덕분에 처음 만나는 스코틀랜드인들과 주절주절 수다도 떨기 시작한다. 


 

 

 

 

 

 

 

 

피로연이 한창일 무렵, 남편의 회사동료 올리비에가 가족과 함께 도착했다.

대학병원간호사인 아내 안느가 일을 하고 오느라고 늦었단다.

다국적 문화가 섞이는 프랑스답게 올리비에부부는 흑백커플이다.

카메룬 출신 프랑스인인 안느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큰아이를 안고 있는 올리비에는

한눈에도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남자로 보였다. 올리비에 부부와의 첫 만남은 짧았다.

이미, 피로연분위기와 달콤한 와인에 잔뜩 취해버린 나는 피곤한 몸을 가눌 수 없었고,

양해를 구하고 피로연장을 떠나야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핑계를 대라면 데비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넘쳐서 그랬던 것 같다.

하여간, 나의 과음 때문에 우리는 데비의 결혼식피로연을 끝까지 지켜  보지 못했다.   

 

 

 

 

 

 

 

그리고 1년 2개월 후, 우리는 올리비에 부부의 결혼식초대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 결혼식이다.

가톨릭신자인 부부는 성당에서 신부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단다.

혼인미사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성당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 첫 번째 원인이고(막세이유에 있는 성당은 도로변에 있어서 시끄러웠다)

두 번째는 엄마아빠 결혼식 내내 울어대는 둘째 카메룬 때문이었다. ㅎㅎㅎ

 

 

 

 

 

 

 

 

결혼식의 시작은 신랑입장부터...그런데 신랑은 엄마와 함께 식장으로 들어선다.

내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자, 실비가 얼른 프랑스는 신랑이 엄마와 함께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이 전통이라고 알려준다. 만약, 우리나라 시어머니들이 신랑과 함께 결혼식장에 들어서면

당장 올가미시어머니로 찍힐 텐데...ㅎㅎㅎ 새삼 문화의 차이가 실감난다.

 

 

 

 

 

 

 

신부는 우리처럼 아버지와 함께 입장을 한다. (물론 우리나라 전통혼례는 아니지만)

안느는 아버지가 안 계신지...남동생과 함께 신부입장을 한다. 그런데 예쁜 둘러리들과

함께 입장하는 모습이 신랑신부 같다. 혼인미사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더운 날씨와 시끄러운 성당 분위기 때문에 미사에 집중하기 힘들다.

옆에 앉은 실비가 중간중간 미사의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프랑스 결혼식 풍습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다.

남편 회사동료인 실비는 차분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영국남자랑 결혼해서 다섯 살 난 아들을 두고 있다.

 

 

 

 

 

 

 


혼인미사가 끝나자 주례를 하던 신부가 하객들에게 얼른 성당 밖으로 나가라고 재촉한다.

결혼식을 끝내고 성당을 나오는 신랑과 신부를 환영해주라는 의미다.

 

 

 

 

 

 

 

드디어, 신랑신부가 성당을 나오자 축하의 노래와 춤이 시작된다.

카메룬 전통의상을 입은 신부의 이모,고모들이 주축이 돼서 쌀을 뿌리며 신랑신부를 환영해준다.

어정쩡하니 근처에 있던 우리도 쌀 벼락을 맞는다. 쌀을 뿌리는 이유는 다산과 다복을 의미한단다.

마구 뿌려지는 쌀이 살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뿌려진 쌀은 비둘기들의 먹이가 된다니...

결혼식 날 새들에게 보시를 하는 복을 짓는 행사 같기도 하다.

 

 

 

 

 

 

 


올리비에의 결혼식은 프랑스와 카메룬의 문화가 만난 현장이다.

이미, 프랑스에 살고 있는 카메룬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의 전통을 결혼식에서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신랑과 신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축하의 노래와 춤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된다. 뜨거운 프로방스 태양을 견디며 노래와 춤을 지켜보던

우리는 포기를 선언하고, 먼저 피로연장으로 떠난다. 

 

 

 

 

  

 

 


올리비에의 결혼식피로연이 열린 곳은 프로방스 시골에 있는 마스(Mas 남프랑스 전통가옥).

이곳에서 우리는 간단하게 음료수와 칵테일을 마시며 기념촬영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1차 피로연 시간을 갖는다. 파스티스나 마티니, 펀치 같은 식전주를 홀짝이며 안주처럼

나오는 음식들을 먹다보니 어느새 배가 부르다.

 

 

 

 

 

(데비남편 스티브는 스코틀랜드 전통을 지키느라 더운 여름 날, 모직킬트를 입고 왔다.

꼬맹이 부르디까지 나란히 킬트를 입은 부자의 기념촬영! ) 

 

 

 

 


신랑신부의 사진촬영은 끝없이 계속된다. 가족들과 친구들, 직장동료들과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그룹을 만들어 사진을 찍는다. 벌써 세 시간째

아무것도 먹지 않고 서서 사진촬영을 하는 신랑과 신부의 체력이 참 대단하다.


 

 

 

 

 

 

 

드디어 9시가 되자, 본격적인 피로연이 시작된다.

신랑과 신부가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며 등장하고 우리들은 그들을 박수로 맞이한다.

신랑과 신부의 가족들은 어느새 무도회 복장으로 옷도 갈아입었다.

오늘 밤을 원 없이  즐기겠다는 각오가 대단해 보인다.

 

 

 

 

 

 


 

커다란 원탁테이블이 가득한 피로연장은 지정석이다. 테이블은 신부를 배려한 듯

아프리카 나라별로 이름을 붙여놓았고, 테이블 위에는 하객의 이름을 써놓은

아몬드사탕주머니가 놓여있다. 이름을 찾아서 테이블에 앉는 일도 쉽지 않았다. 

 

 

 

 

 

 

 


프랑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피로연이다. 결혼식은 간단하지만 피로연을 제대로 즐기면서

신혼부부를 축하해 주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결혼식과 피로연에 익숙한 우리에게 프랑스 피로연풍습은 낯설고 신기한 만큼 적응이 쉽지 않다.

친절한 실비가 메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피로연 설명을 해 준다. 오늘 결혼식 메뉴는 7가지 코스.

앙트레로 나오는 생선 요리를 먹고 나면 신랑신부와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이 있을 거란다.


 

 

 

 

 

 


첫 번째 앙트레요리가 나온 건 9시 30분쯤.

치즈소스에 버무린 해산물파이요리를 받아든 나는 살짝 한숨이 나왔다.

먹는 양이 적은 나는 아까 먹은 안주들 때문에 벌써 배가 부르다.

아까운 음식을 반 이상 남기며 두 번째 앙트레까지 먹고 나니 포만감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때,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며

신랑신부의 웨딩댄스가 시작될 거란다. 하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올리비에부부의 댄스페스티발이 이어진다. 세상에... 10분이 넘게

계속되는 신랑신부의 춤은 웬만한 댄스 팀 못지않다.

프랑스에서 결혼을 하려면 체력도 좋아야하지만 춤도 잘 춰야 할 것 같다. 


 

 

 

 

 

 

 

신랑신부의 춤이 끝나고, 다함께 춤을 추는 시간이다. 춤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괜히

쑥스러워져서 밖으로 나와 산책을 즐긴다.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실비도 살짝 지친 분위기다.

지금 시간은 11시. 이대로 가다가는 12시 이전에 피로연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실비에게 조언을 구한다. 배가 부르면 음식을 거절해도 되느냐, 피로연 중간에 집에 가도 되느냐...

이런 무례한 질문에 실비는 괜찮다는 경쾌한 답변을 해준다.

자기도 사촌 결혼식에 갔다가 너무 피곤해서 중간에 나온 적이 있단다.

 

 

 

 

 

                             (실비네 부부는 끝까지 남아서 결혼피로연을 지켜보는 의리를 과시하겠단다.)

 

 

 

메인 요리가 나온 시간은 12시. 나는 음식을 정중하게 거절했고, 우리는 메인요리가 끝나자

데비네 부부와 함께 일어섰다. 웨딩케이크를 자르는 행사를 지켜보지 못한 것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진도로 나가다가 웨딩케이크는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나올 것 같으니까.

 

결국, 우리는 프랑스 결혼식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다.

영화에서 보았던 멋지고 화려한 결혼피로연이 눈앞에서 직접 펼쳐졌지만,

우리의 체력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결혼식 피로연비용 때문에

쉽게 결혼을 할 수가 없다는 내 친구 도린의 이야기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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