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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다/이탈리아

비오는 날의 베네치아2

 


 

비 오는 날의 베네치아2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이 뚫리고 바다가 넘쳐나는 것 같았다.

빗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까무룩 들었던 잠도 천둥번개에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이러다가 홍수라도 나는 것이 아닐까...

새벽까지 공포에 떨던 나는 급기야 잠든 남편을 깨워서 오늘 일정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조른다. 어제 대강 베네치아를 둘러 본 것으로 만족한다며...

비를 피해서 어서 달아나자고했다. 남편은 피식 웃으면서 괜찮다, 이 정도 비에

베네치아가 범람하지 않는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정말 그럴까?!?


 

 

 

 


 

다행히 쏟아지던 폭우가 조금 느슨해졌다. 아침을 먹고 푸지나->베네치아행 배를 탄다.

바포레또 1일 권과 함께 어우러진 가격은 1일당 22유로. 어제, 중요한 볼거리는

미리 예습을 했으니 오늘은 배를 타고 이리저리 유람을 하면 된다.

 

 

 

 

 

 


9시에 출발한 배는 아름다운 뱃길을 달려 20분 만에 베네치아 본섬에 도착한다.

베네치아의 아침을 느낀다. 한산하다. 관광객들의 발길만 분주하다.


 

 

 

 


밤새도록 빗물로 목욕을 한 베네치아는 맑은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공기가 참 상쾌하다.


 

 

 

 

 

천천히 산책을 즐기던 우리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된다.

허걱! 헬리콥터까지 갖춘 어마어마한 개인요트다.

얼마나 돈이 많길래 저런 요트를 샀을까.

부러움(?)으로 기가 죽은 남편이 그러나 당차게 한 마디 한다. 

“얌마~ 너, 인생을 그렇게 사냐??... 좋겠다.~~~”


 

 

 

 

 

 


우리는 다시 마리아델라살루테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어제, 싼 마리코 광장에서 바라보았던 성당이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에 비구름이 가득하다.

곧 장대비를 쏟아낼 태세다. 우리는 얼른 성당 앞에서 리도 섬으로 가는 바포레또를 탄다. 


 

 

 

 

 

 

배에 오르기 무섭게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휴우~ 일단 안도의 숨을 쉬기는 했지만 리도섬에 내릴 일도 걱정이다.

굵은 빗방울과 함께 바닷물이 더 출렁거린다.

남편은 부력배낭을 꽈악~ 끌어안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ㅋㅋ

 

 

 

 

 

                             (빗속의 리도 섬. 남편표 부력배낭을 품에 안고서...)

 

 

베네치아 여행을 앞두고, 남편의 안전관리의식이 또 발동했다.

만약, 사고가 나서 배가 뒤집히면 수영도 못하는 우리는 100%사망이라면서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배를 탈 때마다 구명조끼를 입는 민망한 상황을

연출할 수는 없고, 어떻게 하면 눈에 띄지 않는 구명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남편이 만든 것이 바로 부력배낭. 제작과정의 노하우는 비밀이다.

낙천주의자인 나는 절대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걱정 많은 남편을 위해서 기꺼이 부력배낭을 애지중지 메고 다녔다.

 

 


 

 

 

 

비키니 그녀들이 넘쳐나는 휴양지 리도섬에 퍼붓는 장대비라니...

우리는 빗줄기가 가늘어질 때까지 인포메이션센터에 붙잡혀있었다.

빗속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난다. 그런데 리도섬은 본섬과 달리 자동차들이 쌩쌩 다닌다.

버스도 제법 있다. 휴양지답게 섬은 온통 고급호텔로 넘쳐난다.

폭우가 쏟아지는 리도섬은 꼭 남의 집에 잘 못 들어온 사람처럼 여행자를 불편하게 한다.

휴양지 너머로 넘실대는 아드리아해의 물결만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1번 바포레또를 탄다. 리도섬을 출발해서 본섬의 큰 운하를 따라 달리는 완행바포레또다.

다행히 빗줄기가 잦아든다. 배를 타고 다니면서 즐기는 풍경, 느낌이 다르다.

 

 

 

 

 

 

우리는 뱃전에 서서 셔터를 눌러대며 어제 우리가 걸었던 거리와 길들을 기억해내고 반가워한다.

옛날에 살았던 동네를 다시 찾아온 것처럼 즐겁다.

 

 

 

 

 

           (무라노섬 건너편에 위치한 공동묘지섬. 사후의 베네치아인들이 모두 모여 살고 있는 곳인가?)

 

 

1번 바포레또를 내려서 52번으로 다시 41번으로 갈아타고 무라노섬으로 간다.

유리공예의 섬, 화려한 유리공예작품을 감상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사진 찍기에 바쁜 남편은 전속모델인 내 사진도 빠지지 않고 잘~ 찍어준다.

알록달록 예쁜 작품들과 함께 내 사진을 찍던 남편이 지나가듯 한 마디 한다.

“나중에 나 혼자 당신 사진 보면 슬퍼서 어쩌지? 그러니까 나보다 빨리 죽지 마!”

 

 

 

 

 

 

 

 

뜬금없이 이게 뭔 소리? 그런데 순간 그럴 수도 있다는... 가슴 아프지만

어차피 누구든 먼저 세상과 이별을 한다면... 그게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의 슬픔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을 내 안에서 키워나갈 수 있을지...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다.

 

 

 

 

                                                 (싼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서 바라 본 풍경)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 물 위에 떠있는 기차역 같다.)

 

 

 

 

 

                                                 (비가 그치자, 곤돌라가 다시 낭만의 노를 젓기 시작한다.)

 

 

                                   (싼 마르코 광장. 바닷물이 이곳까지 밀고 들어와서 통행이 힘들었다.)

 

무라노섬 일주를 한 우리는 다리를 쉴 겸 다시 바포레또를 탄다.

발길 닿는 대로 아니 뱃길 닿는 대로 싼 마리코 성당에서 싼 조르조 마죠레 성당으로

다시 레알토 다리로 돌아다닌다. 성당 근처 골목길은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길을

다 외울 정도다. 배타고, 걷고 다시 배를 타고... 그런데 베네치아 풍경은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저녁이 되자 곳곳이 바닷물에 침수가 된다. 어제보다 더 심하게 침수된 길은 장화가 없으면

걸어 다닐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베네치아를 더 보고 느끼고 싶은 욕심에 침수된 길을

피해서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무릎에 묵직한 통증이 전해져 올 무렵,

마음속에서 이제 그만! 이 정도면 됐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우리는 푸지나로 돌아오는 8시30분 배를 탄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지금도 출렁출렁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다.

내 몸이 아직도 베네치아의 기억을 놓지 않고 있나보다.

그리고 내 마음이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정말 좋았다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베네치아를 사랑하는지, 나도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오늘 밤도 베네치아엔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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