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렛뜨 2010. 9. 6. 22:31

 

 


엑상프로방스 산책 1


오늘은 프로방스햇살이 소곤거리듯 부드러운 날이다. 산책을 즐기기에 딱 좋은 날씨다.

점심을 먹은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첫 번째 산책을 시작한다.

엑스에서 꼭 발 도장을 찍어야 할 곳을 모아서 둘러보는 산책길이다.

 

 

 

 

 

 

 

 

 

나의 엑상프로방스 산책은 로피스투히즘(L'office de tourisme),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시작한다.

엑스의 오피스드투히즘은 큰 분수가 있는 호똥드 근처에 있어서 찾기가 아주 쉽다.

직원들도 친절해서 주황색 엑스지도를 공짜로 나누어주면서 설명도 차근차근 잘 해준다.


 

 

 

 

 

 

 

 

만약, 엑스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세잔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면 당장 세잔 지도를 꺼내주면서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 가볼 수 있는 정보를 꼼꼼하게 알려줄 것이고, 엑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에밀 졸라의 발자취를 알고 싶다고 하면 또 다시 에밀 졸라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다.

물론 모든 서비스는 공짜로 이루어진다.

 

 

 

 

 

               

 

                                                       -플라타너스길로 유명한 꾸으 미하보-

 

 

 

정보센터에서 받은 엑스 지도를 들고 우선 미하보 거리를 걸어본다.

엑스의 상징인 분수의 물을 슬쩍 만져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분수 옆으로 자동차가 다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미하보 거리에 있는 두 번째 분수 La fontaine d'eau chaude 는 온천분수라는

이름처럼 온천수가 나온다. 이끼가 잔뜩 낀 이 분수의 물은 뜨겁지는 않지만 미지근한 물이 흘러나온다.

그래서 여름보다 겨울에 더 온천분수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길이 440미터에 폭이 38미터인 미하보 거리는 엑스사람들이 가장 사랑 하는 산책길이다.

그래서 엑스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히보 거리를 걷다 보면 꼭 친구를 만나게 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나 같은 외국인도 이 거리를 걷다가 친구들을 여러 번 만날 정도니 엑스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러나 중세시대에는 아무나 이 길은 산책할 수 없었다. 1720년까지 이 길은 한쪽이 폐쇄된 길이었고,

신분이 높은 사람, 귀족들만 드나들 수 있는 길이었단다. 이 거리에 가게가 들어서는 것도 금지됐었고,

처음 미하보 거리에 카페가 들어선 것도 18세기 중반이 지나서였단다.    

 

 

 

 

 

 

 

 

 

미하보 거리의 한쪽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엑스에서 제일 큰 책방도 두 군데나 있지만

대부분이 카페와 레스토랑들이다. 이 거리의 카페들은 언제나 만원사례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미하보 거리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에스프레소 커피한잔을 앞에 놓고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만족한 얼굴들이다.


 

         

 

 

 

 

 


 

미하보 거리 카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데 뒤 갹송(Des deux garçon).

1792년에 창업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은 화가 세잔이 단골로 다니던 곳이라 더 유명해졌다.

커피나 음료수, 음식 값이 다른 곳보다 약간 비싸지만 유명세 탓인지 이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많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과 이곳에서 약속을 했다가 자리가 없어서 약속장소를 옮길 때도 있다.

 

 

 

 

 

 

 

 

 

카페는 실내보다 야외테라스가 인기다. 나 역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야외테라스를 선호하지만

가끔은 고풍스러운 실내분위기를 즐기려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처음 카페 실내로 들어갔던 건 화장실 때문이었다. 화장실을 찾아서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2백 년이 넘은 카페의 고풍스러운 실내장식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우아하고 고상한 공작부인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카페 2층에서도 이어졌다. 2층 홀에 있는 오래된 가구들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어쩐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장실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깐 화제를 돌려본다. 유럽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엑스 역시 화장실인심이 인색한 곳이다. 우리나라처럼 화장실을 무료로 개방하는 건물은 없다.

돈을 내야 하는 공중화장실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화장실이 급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카페를 가야한다.

그래서 내 친구는 여행경비 중에서 이 화장실용 카페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살짝 투덜거린다.

이유인 즉, 커피를 싫어하는 친구 남편은 화장실 때문에 카페를 갈 때마다 맥주를 마신단다.

맥주는 마실 때는 시원하지만 얼마 못 가서 화장실을 가야 하는 고약한 술이다.

결국 맥주 때문에 다시 카페를 가게 되고,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또 맥주를 주문해서 마시니...

카페를 들락거리며 거금(?)의 유로를 써야 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단다.

 

알뜰한 나는 여행 중에 가능한 카페를 안 가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카페는 쉬면서 분위기를

즐기는 곳인데, 화장실 때문에 카페에 갔다가 후다닥 커피만 마시고 나오는 일은 재난이다.

해서, 오랫동안 걸어 다닌 뒤라 다리가 무진장 아프고 화장실도 급하다 싶은 순간에 카페를 찾는다.

그래야 오래오래 카페에 머무를 수 있을 테니까. ㅎㅎㅎ

 

 

 

 

 

             

 

 

 

 

미하보 거리를 걸어보았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엑스 산책을 시작할 시간이다. 

산책방법은 두 가지. 튼튼한 두 다리에 의지하는 것과 약간의 돈(2010년 현재 6유로)을 투자해서

꼬마기차를 타는 것이다. 꼬마기차는 편안하게 앉아서 엑스의 볼거리를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고,

영어나 프랑스어로 관광명소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지도를 들고 관광명소를 찾아다니는 일에 미숙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휘리릭 엑스를 구경하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만 꼬마기차의 운행이 관광시즌에 국한되어있고,

40분 안에 후다닥 관광명소를 훑어보는 코스라서 그야말로 주마간산 식의 여행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꼬마기차를 탔더라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엑스의 거리를,

골목길들을 걸으며 산책을 즐겨보는 것이 좋다.

 

 

 

 

 

 

 

 

                  -모노프리 백화점과 카페 벨에뽀크(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 사이로 난 작은 골목길-

 

 


엑스에서 가장 유명한 산책길은 시청과 이어진 성당길이다.

이 길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우선, 산책을 시작할 수 있는 시청으로

발길을 옮긴다. 미하보 거리에서 시청까지 가는 길은 다양하다.

나는 그 가운데 모노프리 백화점 옆으로  가는 길을 선택해서 걷는다.


 

 

 

 

 

 

 

 


모노프리 백화점과 카페 벨에뽀크(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 사이로 난 작은 골목길로 접어든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다. 이탈리아 식당과 옷가게 그리고 신발가게와 환전가게가 이어진다.

골목이 끝날 즈음 좌측으로 베네똥 매장이 보인다. 우측코너에는 프로방스의 유명화장품 매장

록시땅(L'occitane)이 있다. 짙은 노란색 건물, 록시땅 매장 앞에서 보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내가 가야할 길은 가운데 길이다.

 

 

 

 

      

 

 

 

 

그러나 잠시 록시땅 건물 오른쪽에는 작은 광장, 라 쁠라스 델베흐따(La place d'Albertas)로 발길을 돌린다.

이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1650~1730년 사이에 지어진 바로크풍의 건물로 엑스의 명소다.

광장에 중앙에 있는 고풍스러운 분수도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 광장에서는 매년 6월 거리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다시 나의 산책이 이어진다. 록시땅을 뒤로 하고, 가운데 길로 접어들어서 직진해서 올라간다.

길 양 옆에는 부띠크와 식당이 보인다.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왼쪽에 모르간 매장이 보인다.

모르간 앞에 서면 길이 또 세 갈래로 나뉜다. 시청으로 가는 길은 가운데 길이다.

길로 접어들자 멀리 시청시계탑이 보인다. 시계탑을 보며 길을 걷던 나는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히셸므(Place Richelme)광장이다.

 

 

 

 

 

 

 

 

 

이 광장은 오전에는 매일매일 재래시장이 서고,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카페가 들어서는 곳이다.

히셸므광장의 재래시장은 엑스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으로 매일 싱싱한 채소와 과일 그리고

직접 집에서 만든 치즈와 꿀, 올리브 등을 팔고 있다. 유명세 탓인지 재래시장이라도 값은 싸지 않지만

물건이 싱싱하고 좋아서 엑스 시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나의 산책은 다시 시청을 향해 이어진다. 시청광장에 들어서자 시청건물과 이어진 시계탑이 보인다.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진 시청건물과 그 옆에 우뚝 선 시계탑은 엑스의 유명관광명소다.

시청 앞은 늘 분주하다. 시청 앞 분수는 편안하게 걸터앉아 쉬는 여행자들과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매주 화,목,토요일에는 꽃시장이 열려서 광장을 꽃향기로 가득채운다.

 

 

 

 

 

 

 

 

시청 앞 광장의 절반은 카페들이 차지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단골카페도 그 안에 있다.

광장에서는 손님들을 위한 즉석공연이 매일매일 열린다. 커피와 음료수 값도 미하보 거리보다

싸고(약간이지만) 분위기도 한적하다. 가끔 즉석공연을 펼친 거리의 악사들이 수금(?)을

하러 오는데 돈을 꼭 줄 필요는 없다지만 예의상 20~50상티엄 정도의 팁을 준다. 

오늘은 내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자마자 공연이 끝난다. 내가 음악을 못 들었다는 걸

아는지 수금을 시작한 악사는 내가 앉은 테이블을 비켜간다. 


 

 

 

 

 

 

 

 

 


시청시계탑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벽걸이미술관과 성 소뵈르 대성당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은 내가 엑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인데, 늘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시청 앞에서 벽걸이 미술관까지 이어지는 길은 양 옆으로 기념품가게들이 있다.

값은 다소 비싸지만 프로방스의 정취가 듬뿍 느껴지는 기념품들을 구경하면서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길을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광장이 보인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이 광장 안쪽에 벽걸이미술관과 오페라극장이 있다.

 

 

 

 

 

 

 

 

 

미술관이 있는 건물(palais archiepiscopal)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물이란다.

벽걸이미술관은 내가 미술에 문외한이라 그런가 미술관 자체는 별로로 느껴진다.

대신, 미술관건물과 이어진 오페라야외극장을 슬쩍 구경한다.

오늘은 공연이 없는 날이라 객석이 모두 비닐커버로 덮여있다.

오페라극장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에 둘러싸인 천혜의 공연장으로 이곳에서 매년 7월에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나는 미술관 건물 바로 옆에 있는 프레보트 갤러리(galerie la prevote) 정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갤러리 정원은 정말 작고 앙증맞다. 돌집과 어우러진 풍경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사진촬영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다만, 갤러리 오픈 시간이 일정치 않고, 점심시간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갤러리구경이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광장을 나서서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성 소뵈르 대성당이 나온다. 오늘 산책의 마지막 여정이다.

성당 앞에도 작은 광장이 있는데 광장 앞에 있는 건물이 바로 엑스법과대학이다.

이 건물에서는 행정학과 학생들이 주로 수업을 듣는다는데,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곳 프랑스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법과대학을 간단다. 더구나 엑스법과대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라니,

이 학교 앞을 어슬렁거리는 학생들이 새삼 달리 보인다.   

 

 

 

 

 

 

 

 

 


성당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천천히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성당 안은 조용하고 서늘하다. 엑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이 성당은 5세기부터 17세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들어있고 가장 오래된 부분은 2세기에 지어졌단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지겹도록 만나는 건물이 바로 성당이다. 또 규모와 건축양식 그리고 그 안의 유물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곳도 성당이다. 이곳 프로방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은 마을을 가도

그 안에는 꼭 성당이 있다. 규모도 마을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크다. 

 

나는 언제부턴가 성당을 만나는 일이 시들해졌다. 새롭게 만나는 도시나 마을에서 그저 습관처럼

성당을 둘러보고 이 성당은 무슨무슨 양식으로 지어졌구나, 아! 여기는 오래된 성당이네,

우와~ 이렇게 막대한 성당을 짓다니 놀랍다. 신앙의 힘이 대단한 건지, 중세시대 교회의 힘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네? 등등 이런저런 시니컬한 생각만 하게 됐다.

 

 

 

 

 

 

 

 

 

그러나 성 소뵈르 성당은 다르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유럽의 성당이고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성당이라 그런가, 내게 성 소뵈르는 첫사랑처럼 소중한 존재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성당이

주는 기품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없이 좋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을 둘러보고, 메로빙커 왕조의 세례당을 지나 성당의 맨 앞자리로 가서 앉는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이 경건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성당 안은 관광객들의 조심스러운

발소리와 사진기 셔터소리만 들린다. 가끔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아닌가 보다.

 

성당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성당종소리를 구분하는 재주도 생겼다.

내 판단기준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평소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미사시간을 알리는 것이고

요란하게 뎅그렁거리는 종소리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알리는 종소리다.

가끔 성당 앞을 지나다 보면 성당에서 막 결혼식을 마친 부부가 하객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때 울리는 종소리가 가장 요란하고 경쾌했던 것 같다.

 

 

 

 

 

 

 

 

이제 엑스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성당을 나서는데 입구에 앉아있던 집시여인이 애절한 표정으로 구걸을 한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으나 오늘은 어쩐지 외면하기가 미안하다.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을 내민다.

그녀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는다. 덩달아 오늘 산책을 끝내는 내 마음도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