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세잔을 따라 나선 엑스 산책길2
화가, 세잔을 따라 나선 엑스 산책 길2
세잔의 발자취는 엑스 시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엑스 시내를 벗어나야 본격적으로
세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렸던 뷔베무스 채석장이나
세잔이 살았던 집, 자스드부팡 그리고 세잔의 아틀리에가 있는 엑스의 북쪽까지...
엑스에는 정말로 많은 세잔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엑스 시내를 벗어난 산책길은 그러나 조금 복잡하고 많이 걸어야 하거나, 자동차나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래서 나는 걸어서 갈 수 있고 가장 엑스 시내와 가까운
세잔의 아틀리에로 산책을 나선다.
(엑스 외곽에 있는 세잔의 발자취를 그린 지도)
다시, 지도를 펴고 산책길을 점검해 본다. 세잔의 아틀리에로 출발하는 시작지점은
오뗄드빌(HOTEL DE VILLE), 시청 앞이다.
(엑스 시청 앞 광장)
카페를 나와 복잡한 골목길을 통과해서 시청 앞으로 간다.
그리고 시청 시계탑 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서 쭉 올라간다.
이곳은 매일매일 지나다녀도 전혀 싫증나지 않는 길이다. 내가 엑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이기도 한데,
나의 프랑스선생님인 샹탈도 나만큼 이길을 좋아한단다. 엑스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이 길을 걸을때마다 19세기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는단다.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길을
산책하다가 벽걸이미술관 앞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 그녀의 즐거움이란다.
벽걸이미술관과 성소뵈르 성당을 지난 나는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간다.
길 왼쪽으로 블랑제리 '쟈콥'과 오른쪽으로 슈퍼마켓 '스파'가 보인다.
슈퍼마켓을 지나면 바로 횡단보도가 보인다. 나는 엑스 시내를 둘러싸고 도는
순환도로를 건너서 계속 직진한다. 파스퇴르주차장(PAKING PASTEUR)이 보인다.
주차장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주차장이 끝나는 지점까지 계속 걸어간다.
(파스퇴르 주차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 본 거리. 갈림길이다)
드디어 내 눈앞에 갈림길이 나타난다.
세잔의 아틀리에로 가는 길은 오른쪽 길, 친절한 표지판도 보인다.
(세잔의 아뜰리에로 접어드는 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세잔의 아틀리에로 가는 언덕길을 따라 10분쯤 걸어 올라갔을까...
길 왼쪽으로 부드러운 핑크 빛이 감도는 나무대문 집이 보인다.
노년의 세잔이 머물면서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렸던 그의 마지막 작업실, 아틀리에다.
멀리 생트 빅투아르 산이 보이고 마당은 일년 내내 프로방스의 햇살이 가득한 곳이다.
대문을 지나면 바로 황토색 벽에 청회색 창틀과 핑크살색 덧문(프랑스에서는 볼레volet라고 부른다)이
달린 소박한 돌집이 보인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작은 기념품가게가 있고,
가파른 2층 계단을 올라가야 세잔의 아틀리에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촬영금지다.
(세잔의 아뜰리에로 올라가는 계단)
소담한 세잔의 아틀리에는 사방이 창문으로 뚫려있어서 햇살이 가득하다.
천정이 높은 방에는 생전의 세잔이 사용했던 가구와 짙은 나무색 서랍장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가 그림을 그렸던 그림도구도 있고 받침대 한쪽이 부서진 나무의자와 쿠션이 내려앉은
작은 소파도 보인다. 물감이 달라붙은 화통과 붓들, 먼지를 뒤집어쓴 유리잔과 와인 병들...
세잔이 입었던 카피색 울코트와 검은색 트렌치코트까지...
아틀리에 안은 살아생전 세잔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틀리에 정원은 야외카페 같다. 정원마당에 놓인 테이블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세잔을 추억하기에 더 없이 좋다. 세잔도 이 햇살이 가득한 뜰에서 산책을 하고
그림의 영감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또 그가 외로운 삶을 마감한 곳이다.
1906년 10월 16일, 심한 고열을 앓던 그는 마당 한쪽에서 정원사의 모습을 스케치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엑스시내에 있는 그의 집으로 옮겨졌을 때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단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다양하다. 그가 비붸무스 채석장에서 비를 맞으며 그림을 그리다가
쓰러진 뒤, 그의 집으로 옮겨졌고...며칠후에 생을 마감했다는 설도 있고... 아뜰리에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쓰러졌다는 설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엑스사람들도 잘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세잔은 사과를 그리는 화가였다. 화가 모리스 드니가 말했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세 개가 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고 두 번째는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 번째는 세잔의 사과다.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게 말을 건넨다."
정말 그랬다. 세잔은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단다. 이렇게 치열한 그의 화풍은
후기인상주의를 비롯해서 입체파와 야수파, 상징주의 등에 영향을 주게 된다.
(세잔의 그림으로 더 유명해진 산, 생트 빅투아르)
그러나 내가 엑스에 와서 만난 세잔은 달랐다. 이곳에서 그는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는 화가였다.
좀 엉뚱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스위스에 알프스가 있다면 엑스에는 생트 빅투아르 산이 있다.
알프스처럼 거대한 산은 아니지만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이 산은 실제로 세잔의 그림으로
더 유명해진 산이다. 엑스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생트 빅투아르 산은
엑스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정말 멋있다.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려고 많은 곳을 찾아 다녔다. 그 가운데 '레 노브'도 있다.
'레 노브'는 세잔의 아틀리에와 멀지 않다. 나의 산책길은 이제 ‘레 로브’로 향한다.
아틀리에를 나온 나는 먼저 호흡을 가다듬는다. 지금부터 더 길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한다.
타박타박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다보니 도로 한 가운데 커다란 성문이 떡 버티고 섰다.
공식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세잔의 문'이라고 불리는 성문이다. 옛날 이곳에 크고 어마어마한 성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해 본다. 성문 옆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삼각형 모양의
희고 커다란 바위산이 보인다. 바로 생트 빅투아르산이다. 우뚝 선 산세가 이상하리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산이다. 내가 처음 이 산을 만났을 때, 그리고 세잔이 이 산을 평생 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왜 그렇게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를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았다.
‘레 로브’는 엑스 근처에서 세잔이 찾은, 생트 빅투아르가 가장 잘 보이는 지역이다.
'세잔의 문'을 지나 마지막 힘을 내서 언덕길을 5분 정도 더 올라간다.
길의 왼쪽으로 '레 로브'로 올라가는 표지판과 함께 돌계단이 보인다.
'레 로브'에서 바라보는 생트 빅투아르는 참 잘 생겼다. 이곳에서 세잔은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단다. 레 로브 정상에서는 세잔이 그린 다양한 생트 빅투아르
그림들도 만날 수 있다.
천천히 그림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려서 다시 산을 바라보며 화가의 숨결을 느껴본다.
레 로브 주변은 아름다운 프로방스 주택가다.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주황색기와지붕에
황토색 벽을 가진 프로방스 집들이 즐비하다. 파스텔 톤의 덧문이 아름다운 프로방스 집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나는 조용조용 레 로브를 산책하며 세잔의 열정을 생각해본다.
친한 친구인 에밀 졸라의 빈정거림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세계를 지키고 만들어간 대화가의 집념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산, 생트 빅투아르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