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기/Aix에서 사는 동안

우리들의 무슈 베르그

비올렛뜨 2011. 1. 17. 18:10

 

꽁씨에즈 무슈 베르그

무슈 베르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가을이었다. 엑스에 도착한지 40일 만에 집을 구한 우리는

모든 것이 서먹서먹했고 매사에 서툴렀다. 하다못해 쓰레기를 어디다 버리는지도 몰랐고,

아파트현관으로 들어오는 열쇠를 돌리는 방법도 서툴렀다.

 

이사를 하고난 첫 주말, 아침을 먹고 집 근처를 둘러본다고 나갔던 남편이 현관에서 벨을 눌렀다.

열쇠를 아무리 돌려도 문이 안 열린다며 황당해했다. 집안에서 현관문을 열어주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급한 마음에 집안에서 입던 옷 그대로에 머리에는 잔뜩 찍찍이 구르푸를 붙인 채로 얼른

일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물론 이런 내 모습은 남편 외에는 절대로 타인에게 공개할 수 없는 상태다.

행여, 나의 이런 우수꽝스런 모습을 남들이 볼까 조마조마하면서 일층 현관으로 내려가는데

등 뒤에서 “봉쥬흐 마담”하는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허걱!

 

 

 

 

 

 

우리는 무슈 베르그를 그렇게 만났다. 큰 키에 안경을 쓴 그는 웃는 얼굴로 다가와서 꾸벅 절을 하더니,

현관문을 직접 열고 남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현관열쇠를 돌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손목에 힘을 빼고 살짝 왼쪽으로 돌려야 현관문이 열린단다. 우리부부가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것을

잘 아는지 그는 짧은 영어를 구사하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은 베르그고 막세이유에 살고 있단다.

그리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새벽부터 점심때까지만 일을 하고 오후에는 잠을 자니까

(이부분에서 그는 프랑스어를 하면서 잠을 자는 제스처를 구사했다), 전화를 할 일이 있으면 오전 중에

해 달란다. 그리고는 우리부부를 지하주차장으로 데리고 가서 쓰레기를 버리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는 아파트입구에 있는 분리수거통에 쓰레기를 버린 범인이 나라는 것을 알고, 내가 왜 그곳에 쓰레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를 해 준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그와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사이에 우리는 그의 활달하고 명랑한 천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같이 있으면 저절로 즐거워지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언제나 명랑하고 호탕하게 웃는 우리들의 무슈 베르그)

 

 

그는 또, 우리 아파트의 해결사다. 자질구레한 아파트 청소부터 정원관리는 기본이고 입주민들의 대소사까지

참견하고 챙겨준다. 이웃사람들에게 우리부부를 소개하기도 하고, 우리를 만나면 늘 반갑고 살갑게 인사를 한다.

거동이 불편한 앞집 할머니를 지하주차장에서 만나면 언제든지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할머니가 집안에서

넘어져서 꼼짝 못할 때 우리 집 베란다를 통해서 앞집으로 넘어가서 할머니를 구해드리기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앞집에 두 살 난 아들을 둔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오자 그의 딸이 갖고 놀던 장난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가 언제부터 우리 아파트에서 꽁씨어즈로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파트의 역사와

주민들의 일상을 모두 알고 있는 걸 보면 가히 우리 아파트의 산증인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할 때는 늘 휘파람이나 콧노래를 부르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살뜰한 인사를 나누는 그를 보면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때가 참 많았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우리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었다.  특히 천진난만에 장난스러운 성격이 비슷한 남편과는 죽이 잘 맞아서

엉뚱한 농담을 주고받을 때가 많았다. 아주아주 기초적인 영어밖에 모르는 그와 프랑스어라고는 봉쥬흐~밖에

모르는 남편은 신기하게도 말이 잘 통했다. 내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말이 통하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나를

통해서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열심히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니는 나를 기특해하고 고마워했다.

 

어느 날인가, 아침 일찍 학교를 가는 길에 아파트 마당을 쓸고 있던 베르그와 마주쳤다.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장미 한 송이를 내밀었다.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해줘서 고맙다는

표시란다. 아침 일찍 정원손질을 하면서 잘라놓은 것 같다. 뜻밖에 외간(?) 남자에게 꽃을 받은 나는 하늘을

날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었고 그날 내내 기분이 좋았다. 질투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남편도

그런 그를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프랑스에는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소방관이나 청소부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는 풍습이 있고, 연초에는 꽁씨어즈처럼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덕담과 함께 선물이나 돈을 주는 문화가 있다. 소방관이나 청소부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의례적으로 집집마다 돈을 받으러 다니기에 이런 풍습을 알고 있었지만 연초의 풍습은 작년 말에야 알게

되었다. 순간, 우리는 3년 동안 무슈 베르그에게 빚을 진 것처럼 미안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봉투에 금일봉을 넣어서 전해주고 싶지만 괜히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돈 싫다는 사람은

없겠지만 불쑥 돈 봉투를 내밀 일이 난감했다. 외국인인 우리까지 이런 풍습에 동참한다며 혹시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생겼다. 그래서 궁리 끝에 한국에서 가져 온 구운 김 세트를 선물했다.

그에게 우리나라를 소개도 하는 의미도 있었다. 일년에 한 번, 한국에서 식료품을 공수해오는 우리에게

구운 김은 값을 떠나서 귀한 물건이고 베르그 입맛에도 맞을 것 같아서였다. 그에게 김 세트를 선물하면서

맛을 보여주었더니 정말정말 맛있다면서 환호한다. 꼭 밥을 지어서 함께 먹으라는 당부를 하고 돌아서는데

괜히 내 기분도 좋아졌다.

 

 

 

 

 

                (베르그의 카드. 남편에게 쓴 영어편지는 불어와 영어가 섞여서 더 재밌는 글이 됐다.)

 

 

 

다음 날 아침, 무슈 베르그가 찾아왔다. 쑥스러운 듯, 작은 카드를 내밀면서

프랑스어는 내게 쓴 것이고, 영어는 남편에게 쓴 글이란다.

 

“마담, 새해를 맞아 저를 아껴주시는 당신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당신의 선물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올해도 건강하게 하시는 일 모두 이루세요. 당신의 어여쁜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그의 카드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특히 그에게 버거웠을 영어편지가 우리  마음을

더 촉촉하게 해 준다. 따뜻한 그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한 장의 카드는 타국살이를 하는 우리에게

작은 힘을 준다. 무슈 베르그, 그는 우리에게 친절하고 명랑한 프랑스사람의 대명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