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의 그늘, 개똥의 거리
프로방스의 그늘, 개똥의 거리~
“으악! 똥! 여기도 있어. 으악!”
프로방스로 여행을 왔던 친구가 길을 걸으며 5분 간격으로 비명을 지른다.
중세시대를 여행하는 것처럼 도시가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르더니 곧 못마땅한 얼굴로
거리의 개똥들을 바라본다. 상태를 보니, 송아지만한 개가 방금 전에 실례를 해 놓은 것 같다.
우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개똥을 피해 길을 걷는다.
(개들은 이렇게 주인과 함께 쇼핑을 나오기도 한다. ㅎㅎㅎ)
“으윽. 왜 이렇게 길에 개똥이 많은 거야?”
그 이유는 뻔하다. 개주인의 몰지각함과 이기심 때문이다. 어쩌면 잘못된 관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사람들의 개와 고양이 사랑은 유명하다. 그들에게 개와 고양이는 그냥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이다.
그래서 개들의 대모, 브리짓드 바르도는 한국인의 개고기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쑥불쑥 공격적인 말을
퍼붓는다. 가족 같은 개를 먹다니...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한국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나 역시, 우리나라의 개고기문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무턱대고 우리 개고기문화를 욕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적어도 귀여운 토끼와 비둘기 그리고 개구리와 달팽이까지 먹는 프랑스인들은 우리의 개고기 문화를
욕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개를 식구처럼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은 아침, 저녁으로 개와 산책을 즐기는 것은 기본이고 외출을
할 때도 개를 데리고 다닐 때가 많다. 말이 애완견이지 대부분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개들은
송아지만큼 큰 개들이다. 개를 좋아하는 나도 가끔 움찔해 질 정도로 개들이 크고 무시무시한
경우가 많다. 다행히 겉보기와 달리 대부분 녀석들은 순하다. 얼마나 훈련을 잘 시켰는지 주인에게
절대로 복종하고, 사람들이 곁을 지나가도 짖지 않는다. 순한 양이 따로 없다.
가끔 길에서 만난 개들끼리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경우가 있지만 사람들을 물거나 대드는 개는 거의 없다.
(할머니가 기다리는 것은? 녀석의 자세가 엉거주춤 심상치 않다. 으윽)
그런데 왜 그들은 개의 배변훈련을 안 시켰을까? 훈련이 불가능해서일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배변훈련을 따로 시킬 이유가 없을 것이다. 거리가 모두 화장실이니까.
대부분 개 주인들이 개를 산책시키는 이유는 밖에서 볼 일을 보라는 의미란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개 주인이 개의 배설물을 치우면 거리에 개똥이 뒹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고 개똥 청소를 전담하는
청소부를 두느라 세금을 낭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처럼 개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개똥을 밟는 불상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개똥을 치우는 개 주인들이 거의 없는 것이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 개똥수거용 비닐봉지가 설치되어 있지만 사용자는 많지 않다.
나 역시, 3년 넘게 프랑스에 살면서 거리에서 개똥을 치우는 개 주인을 딱 한 번 봤다.
프랑스인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특히 개를 안 키우는 사람들은 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비판을 가한다. 개똥을 안 치우다걸리면
벌금을 내야하는데도 개 주인들은 끄떡도 않는다면서 혀를 찬다. 프랑스어 교수 마담 탕카니는
자기 집 앞에다 볼일을 보는 옆집 개와 뻔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척하는 옆집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며 은근히 몰지각한 프랑스인들의 흉을 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왜 그렇게도 개를 사랑하면서 개똥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일까?
오늘은 유난히 거리에 개똥이 많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여학생 한 명이 친구와 마주서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신발을 길바닥에 직직 닦아내는데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있다.
이렇게 길을 걷다보면 개똥을 밟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나 역시,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하고
개 주인들을 향해서 이를 득득 간 경험이 있다.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몰염치한 흡연자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개똥을 버리고 간 개 주인들이라며 혈압을 높인 적이 있었다.
(요 녀석이 바로 우리동네 오염의 주범. 동네 길이 다 녀석의 화장실인데, 주인은 천하태평이다.)
“조심! 또 똥이닷!”
길을 걷던 친구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나가던 프랑스아줌마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프랑스어 발음으로 똥(thon)은 참치다. 그러니까 길바닥을 가리키며 참치를
외쳐대는 우리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 순간, 우리는 눈을 찡긋거리며 암호를 정했다.
앞으로 개똥을 보면 참치를 외치기로! 그날 우리가 산책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참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당분간 참치는 고사하고 참치통조림도 먹고 싶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