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교통문화
사람중심 교통문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의 주인공 프랜시스는 피렌체로 조명기구를 사러 나갔다가 바람둥이 이탈리아남자
마르첼로를 만난다. 그녀는 멋진 조명기구를 살 수 있다는 마르첼로의 말을 믿고 그의 차를 타고 피렌체를
떠난다. 운전대를 잡은 자신만만 뻔뻔남 마르첼로는 전속력으로 교통신호를 무시하며 도로를 달린다.
그의 거친 질주에 겁이 난 프랜시스가 왜 신호등을 보지 않느냐, 삼색 신호등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마르첼로가 기세등등하게 대답한다.
‘그럼요. 파란불은 달리라는 거고, 노란불은 장식용, 빨간불은 그냥 참고사항 이죠. 하하하 ’
이탈리아에서 운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소 과장된 마르첼로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거친 운전환경에 적응된 운전자들도 허걱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차선도 없는 도로를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이탈리아 자동차들 사이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진땀이 절로 난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이는 것 같다.
프랑스의 운전환경은 어떨까? 영국인들은 프랑스의 운전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느긋한 프랑스인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급해진다는 소리도 한다. 교통사고율이 높은 것도, 올해 교통사고사망자가
21%나 증가했다는 것도 그들이 프랑스 교통을 걱정하는 이유다. 그런데 내가 본 프랑스운전자들은
예의바르고 정직하다. 가끔 교통흐름을 깨버리는 생뚱맞은 운전자 출몰하기도 하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만약 프랑스 마르첼로가 신호등을 해석한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
‘파란불은 달리라는 것이고, 노란불은 멈추라는 뜻이고, 빨간불은 멈추지 않으면 큰 일 난다는 의미다.’
이는 모든 운전자가 명예를 걸고 지키는 원칙이다. 자동차, 버스는 물론이고 오토바이와
자전거운전자까지도 도로에서는 신호를 철저하게 지킨다. 정말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교통사고율은 영국보다 훨씬 높다. 하긴, 신호만 잘 지킨다고 사고가 안 나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처음 프랑스에 와서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란 사실은 모든 오토바이들이 철저하게 교통신호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살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신호를 어기는
오토바이는 한 번도 못 봤다. 딱 한번, 신호를 어기는 자전거를 봤는데 운전자가 동양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프랑스인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아주 가끔은 신호를 무시하는 운전자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그런 운전자를 못 봤으니 확률 상 많지는 않은 것 같다.
1996년도였던가, mbc에서 ‘이경규가 간다-숨은 양심을 찾아서’ 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었다.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이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의 교통문화가 많이 바뀌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가 없다.
그만큼 운전자들이 철저하게 교통법규를 지키기 때문이다.
(빨간불에서도 여유만만 길을 건너는 사람들. 순진한 자동차들은 이런 보행인 때문에 잠깐 차를 멈추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철저하게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운전자들이 보행인이 되면 180도 달라진다.
다시 마르첼로의 표현을 빌려 프랑스보행인 입장에서 신호등을 해석해보면 이렇다.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은 당당하게 길을 건너라는 뜻이고, 노란불은 빨리빨리 길을 건너라는 거고,
빨간불은 주위를 잘 살펴보고 길을 건너라’는 뜻이다.
정말 그렇다. 평소에는 느긋한 사람들이 길을 건널 때는 뭐가 그리 급해지는지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뀌는 걸 기다리지 못한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자동차흐름이 끊겼다 싶으면
어김없이 길을 건넌다. 거의 무단횡단 수준이다. 만약 보행자가 자동차도 없는 도로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서 있다면 그 사람은 준법정신이 투철한 것이 아니라 고지식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프랑스의 현실이다. 길은 꼭 횡단보도로 건너야하고 무단횡단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우리 교통문화에 익숙한 입장에서 보면 무질서도 이런 무질서는 없다는 느낌이다.
(물론 빠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예전의 빠리사람들은 프로방스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운전을 했었는데, 지금은 성질이 많이 급해졌단다. 그러니까 대도시에서는 무단횡단할때
더 조심해야한단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무단횡단을 한다면, 벌금은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거다. 그런데, 나쁜 짓은 꼭 먼저 배운다는 말처럼 우리도 어느새 프랑스사람들처럼
무단횡단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자동차도 안 오는 길에 서서 무조건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일은 바보같이 여겨진다. 만약, 프랑스판 ‘이경규가 간다’를 제작하고 싶다면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를 대상으로 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보행자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자동차 한대가 조심조심 뒤를 따라 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마구잡이로 무단횡단을 하는 것은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이 우선인 사람중심의 교통문화가 그들의 백이다. 사람중심의 교통문화는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든 사람은 자동차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자동차 따위가 감히 인간의 권위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하다. 물론 무조건적인 사람중심 교통문화가 불합리한 점도 있지만
나는 그 정신이 참 마음에 든다.
사람중심의 교통문화는 여기저기서 엿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엑상프로방스의 시내골목길은 거의가
보행인차지다. 차도 옆에 버젓이 인도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툭하면 차도로 내려와서 길을 걷는다.
워낙 길이 좁은 탓도 있지만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확실하게 있는데도 사람들은 무심코 또는
막무가내로 차도를 침범한다. 그러면 자동차는 순한 양처럼 사람들 뒤를 졸졸 따라간다.
절대로 사람들에게 비켜달라는 크락숀을 울리지 않는다. 차도를 침범했던 보행인들이
미안하다는 듯 길을 비켜주면 자동차는 그때서야 속도를 높인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그렇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기웃거리고 있으면 대부분 자동차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어서 길을 건너라는 제스처를 보낸다. 이런 작은 친절은 곧 전염이 된다.
보행자입장에서 이런 친절을 경험한 우리는 운전자입장이 됐을 때,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차를 멈추고 어서어서 길을 건너라는 제스처를 보낸다.
남편은 한술 더 떠서 보행자에게 부담이 안 가도록 멀리 차를 세운다.
완벽한 사람중심 교통문화현장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이렇게 작은 친절은 꼭
실천하고 싶단다. 순간 남편의 바람이 걱정스럽게 들린다. 보행자를 위한답시고 차를 멈추었다가
뒤따라오던 자동차한테 받힐 것 같다. 괜한 나의 노심초사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운전자입장과 보행자입장에서 신호등을 다시 한번 해석해본다.
먼저, 운전자 입장에서...
‘파란불은 달리라는 것이고, 노란불에서는 요령 있게 멈추거나 지나가야 하고,
빨간불에서는 걸리지 않으려면 멈춰야한다.’는 의미다. 이 말은 곧 걸리지 않을 것
같으면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리겠다는 것이다.
보행자입장에서 ‘파란불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잘 살펴보고 건너라는 것이고,
노란불은 전속력으로 달려야 살아남는다는 의미고 빨간불은 절대로 길을 건너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만약 사고가 나면, 보행자책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