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어학원1
IS어학원에 가다 (2007년 10월)
프랑스에 온지 벌써 한 달 반이 넘었고, 이사를 한 지도 이주일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프랑스 말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 신세라 문밖을 나서는
심정이 편치 못했었다. 특히 이케야나 꺄푸에서 물건을 살 때, 계산원이 뭐라뭐라
말을 시키면 멍한 얼굴로 미소만 지을뿐 속수무책이었다.
“뭐야~ 당신 회사에서 가족들한테 프랑스어를 가르쳐준다며?”
프랑스어 때문에 민망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남편한테 바가지를 긁었다.
남편은 ‘그러니까 프랑스지~’하면서 뭐든지 느릿느릿한 프랑스의 현실을 은근슬쩍 꼬집는다.
맞다. 느림의 미덕이 바로 프랑스니까, 그래도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지, 하면서 기다리기를 한 달 20일.
드디어 가족을 위한 프랑스어 레슨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교육기관은 엑스에 있는 IS어학원. 전 세계 2천명의 학생들이 와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유명한 교육기관이란다. 집에서는 걸어서 12분 정도 거리. 완벽한 조건이다.
이제 마음 놓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답답함을 풀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에 어학원으로 달려갔다.
<엑스에 있는 is어학원. 엑스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꽤 비싼 어학원으로 알려져있다>
남편 회사와 is어학원은 엑스에 사는 가족들을 위해서 프랑스어레슨 과정을 새로 개설했다.
수강생들은 나처럼 프랑스어를 처음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년부터
공부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레벨 테스트를 한다며, 시험지를 나누어주었다.
문제는 당신이 만약 인터넷상에서 처음 외국 친구를 만났는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건지 쓰라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어로 문제가 나왔고, 선생님이 친절하게 영어로 해석해서 알려주었다. 오케이! 이 정도 쯤이야.
그 동안, 동영상강의를 들으며 쌓은 실력이라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나는 신나게 프랑스어로 내 소개를 써나갔다. 답안지를 적다보니 나와 내 옆에
앉은 인도인, 일본인만 답안을 작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테스트도 어려웠나보다.
다음 날, 레벨테스트를 담당했던 크리스토퍼 교수가 내가 공부할 반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오잉? 교실로 들어가니 작년부터 공부를 한 쟁쟁한 멤버들이 잔뜩 앉아있다.
이건 뭐가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됐다 싶은데... 우리들의 선생님 크리스텔르가
들어와서 출석을 부른다. 분명히 내 이름도 있다. 이건 더 아닌데?
한 5분쯤 수업이 진행되었을까? 이렇게 내 수준을 능가하는 반에 앉아서 수업을
한다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차근차근 기초부터 다져야지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선생님한테 태클을 걸었다. 나는 지금 막 프랑스어를 시작한 사람인데,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없으니 반을 옮겨 달라고 했고... 나와 함께 온 인도와
일본인 아줌마도 내 의견에 동의를 했다.
결국, 우리는 기초반으로 다시 투입됐다. 인도아줌마는 내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기초반으로 가면서 너무 쉬운 공부는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는 건방진 걱정을 살짝 했는데,
정말 기우였다. 기초반 강의도 만만치 않다.
네 명의 한국아줌마와 네 명의 러시아아줌마 그리고 일본아줌마, 인도아줌마를
이끌고 수업을 하는 동갑내기 나이마 선생은 열정적으로 진도를 팍팍나간다.
A,B,C,D...발음을 해주는 가 싶더니 바로 이름말하기와 사는 곳, 나이 등을
줄줄이 말하는 코스로 들어간다.
ETRE와 ABOIR 동사변화까지 단숨에 알려주니...
기초를 아는 나도 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싶은데 전혀 프랑스어 공부를 안 했던 희은엄마, 선옥씨가
사색이 된다. 그러나 차라리 잘 됐다. 선생님이 진도를 팍팍 나가니까 집에서 열심히 예습을 하면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런 각오로 집에 오자마자 발음연습을 했던 단어들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앞으로 나의 프랑스어 공부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저녁을 먹고, 책에 코를 박고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한 마디 외친다.
“칫! 당신이 내 뒷바라지 하려고 프랑스로 온 게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내가 당신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해주려고 온 것 같아”
ㅎㅎㅎ 이렇게해서 나는 팔자에도 없던 유학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