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도시를 돌다 -모로코 5
황제의 도시를 돌다- 모로코 5
라마단을 앞둔 모로코는 전국이 결혼시즌이다. 이른 아침부터
허니문차량들이 크락숀을 울리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밤새도록 결혼피로연을 즐기고 나온 무리들로 거리는 축제분위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젯밤도 결혼식 피로연 소음때문에 잠을 설쳤다.
아침 일찍부터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페즈시내를 바라보며, 오늘의 일정을 들었다.
페즈에서도 우리는 현지가이드를 따라 도시탐방을 할 거란다. 발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골목길이 복닥복닥해 보였다.
"자! 지금부터 여러분은 저와 함께 골목길을 걸어다닐 겁니다. 5키로는 족히 걸을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세요."
앞장을 서는 가이드를 따라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휴! 만약 가이드가 없었다면... 미로처럼 얽힌 저 골목길을 어떻게 다녀야 했을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페즈의 골목길은 생각보다 좁고 복잡했다. 곳곳에 쌓인 쓰레기때문에 악취도 났다.
아! 이렇게 열악하고 더러운 환경에서 어떻게들 살까!
이런 걱정과 달리 이상하게도 골목길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골목길 1층은 거의가 상점들이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좁은 골목길에 수도 없이 늘어선 작은 가게들은 영세하지만 정감이 넘쳐보였다.
"정부에서 이 근처에 큰 쇼핑몰을 지을 계획을 세웠답니다. 그랬다가 난리가 났었죠."
어딘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현지가이드가 페즈의 쇼핑센터 해프닝을 이야기 해주었다.
대형쇼핑몰이 들어서면 영세한 골목길 상인들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페즈시민들은 이 문제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대형쇼핑몰 건설을 반대했단다.
가난해도 오손도손 복닥복닥 살아가겠다는 것이 페즈시민들의 생각이었단다.
<페즈골목길에서 가장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았던 사파린 광장>
모로코에서 가이드는 인텔리한 직업이란다. 외국어도 보통 3개국어 이상은 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점잖고 당당한 페즈가이드는 우리에게 페즈의 명소보다 페즈사람들의 삶을 더 보여주고 싶어했다.
가장 오래된 신학교 메파린신학교와 부 이나니아 신학교, 테투안 호텔 등은 건성건성 보고
우리를 시장골목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카페트가게로 데려갔다.
우리가 물건을 사면 자신이 커미션을 받는 다는 이야기도 당당하게 한다.
너무 뻔뻔한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의 당당함이 밉지 않았다.
다행히,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눈치는 주지 않았다.
<카페트를 파는 가게. 카페트보다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한 실내분위기에 더 시선이 갔다.>
작은 골목길에는 고단한 페즈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보였다. 마음이 살짝 무거워지려는 순간,
가이드가 우리를 데리고 테너리가 내려다 보이는 가죽가게로 들어섰다.
가죽가게의 맨 꼭대기층. 테너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났다.
미리 나누어준 박하나뭇잎을 코에 대고 있어도 냄새를 막을 수 없었다.
테너리. 그곳은 냄새만큼이나 진하고 고약한 인생이 담겨있는 곳이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가죽 가공과정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테너리를 나선 우리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만든 가죽제품을 사주는 것일텐데..... 내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찾지 못했다.
가죽의 질은 좋아보였지만, 바느질이 투박했다. ㅠㅠㅠ
다리가 아프도록 골목길을 헤매는데 이상한 매력이 물씬 풍겼다.
구석구석 더러운 골목길도, 구질구질한 그들의 삶을 관광상품화하는
모로코인들의 당당함도 그다지 싫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페즈 구시가지의 전통식당은 겉과 속이 달랐다.
한참, 허름한 골목길을 찾아 들어간 식당은 겉모습과 달리 너무 화려했다.
모로코사람들은 자기 집안만 잘 꾸미고 산다더니... 정말 그런 가 보다.
기왕 꾸밀거면 자기 집뿐 아니라 동네도 같이 꾸미면 더 좋지 않을까?
매운소스와 함께 먹은 모로코식 쿠스쿠스는 맛있었다. 역시 쿠스쿠스는 본토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나나보다.
튀니지에서도 그랬지만 모로코에서도 쿠스쿠스는 어디서든 맛있었다.
오후 일정은 바타박물관 -> 왕궁 -> 메린왕조묘지를 둘러 보고, 도자기모자이크 가게를 간단다.
바타박물관은 옛 왕궁이었단다. 전시내용은 빈약하지만 왕궁은 참 멋있다.
서민들은 비참할 정도로 허름한 동네에서 복닥거리는 사는데, 왕은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살았구나.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황금문을 가진 왕궁에서 휘리릭 사진만 찍고 왕궁묘지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왕조의 묘를 둘러보는 일보다 우리는 페즈시가지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고단하지만 활기차보이던 페즈사람들의 삶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 같다.
이제 모로코 황제가 살았던, 황제의 도시들을 둘러보는 공식적인 일정은 모두 끝났다.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아놀드대령부부와 호텔근처를 산책했다.
페즈의 샹제리제거리에 어둠이 내리고...페즈의 밤이 깊어간다.
밤이라 그런가, 7월로 접어들었는데도 페즈의 기온이 쾌적했다.
내일, 뜨거운 사막의 도시 마라케시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