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1/ 인터넷과 씨름하기
지난 10월 10일. 어렵게 집 계약을 하던 날,
우리의 부동산언니 베아트리체가 프랑스 텔레콤에 인터넷 신청을 해 주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 그리고 전화까지 사용하는 조건으로 한 달에 39유로.
(나중에 이것저것 더 붙어서 돈을 더 냈다) 프랑스는 인터넷 신청을 하면
보통 한 달은 족히 걸린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한 달 동안
인터넷과 전화와 텔레비전 없이 살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안 되는
세상은 살맛이 안 난다. 인터넷이 연결이 돼야 TV도 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
텔레비전도 안 나온다. 모든 통신이 두절된 세상에서 사는 기분이다.
<인터넷이 없는 심심한 세상, 우리는 대신 부지런히 산책을 다녔다>
그런데 인터넷 신청을 한지 일주일 만에 인터넷박스가 배달됐다. 야호!
우리나라 같았으면 이사 당일 날, 통신사 직원이 나와서 바로 인터넷 연결을
해주겠지만 여기서는 어림도 없는 일. 배달 된 인터넷 박스를 직접 설치해야 한다.
만약, 설치가 힘들어서 사람을 부르게 되면 기본이 100유로란다.
새삼,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이 그립고 자랑스러워진다.
우리나라는 전화국에 전화 한 통만 하면 그 날로 뚝딱 인터넷이 연결되는데 이게 뭔가!
남편은 배달된 인터넷 박스를 받아들고 신이 났다. 나 역시, 이제 설치만 하면
일주일 만에 인터넷이 개통되는 줄 알고 들떴다. 그런데 아니다.
아무리 아무리 인터넷을 설치해도 개통이 되지 않는다.
무슨 문제인지 프로그램이 설치 중에 막혀버려서 속수무책이 된다.
우리보다 먼저 온 가족들도 인터넷을 설치하려고 씨름하다가 수없이 좌절했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아무래도 그 원인은 프랑스 텔레콤에 있는 것 같다.
자세한 인터넷 시스템을 모르겠지만 인터넷 박스를 준 것만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텔레콤 회사에서 라인을 활성화 시켜줘야 하는데,
말로는 활성화 시켰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해놓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경우일까?
이런 내 추측과 달리 남편은 혹시나 한국에서 가져온 우리 노트북들이 이곳
시스템과 맞지 않는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죄 없는 노트북만 들들 볶아댔다.
아무리 해도 연결이 안 되는 인터넷 앞에서 좌절하면서 며칠 밤을 보냈다.
결국 베아트리체가 다시 텔레콤 회사에 전화를 했고, 이달 말쯤에서 활성화가
될 것 같다는 정보를 전해준다. 정말 뒤집어질 일이다.
고객과의 약속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그렇다면 이미 활성화 시켰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란 말인가!
<문제의 인터넷 박스. 요게 없으면 인터넷과 전화, 텔레비전.. 모두 꽝이다>
활성화가 됐다는 날부터 남편은 퇴근과 동시에 인터넷 설치에 매달리기를 반복했다.
결과는 매일 밤마다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포기.
주위에서는 경험자들의 별별 충고가 다 들려왔다. 안 되도 계속 설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아직도 텔레콤 회사에서 연결을 안 해 놓은 것이 틀림없으니까
빨리 해 달라고 독촉을 해야 한다, 혹시 컴퓨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먼저 온 임박사네도 인터넷 연결이 하도 안돼서 좌절하다가,
텔레콤 회사에 가서 펄펄 뛰며 따졌더니 금방 연결이 됐다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난무하는 충고 속에서 남편은 한 달 동안 꾸준히 인터넷과 씨름을 했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던지 어떤 날은 노트북 근처에도 안 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인터넷이 개통됐다. 꼭 한 달 만이었다.
텔레콤 회사에서 알려준 방법이 아닌 엉뚱한 방법으로 개통에 성공했는데...
지금도 왜 어떻게 인터넷이 됐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하여간, 한 달 만에 인터넷과 만난 우리는 문명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인터넷이 되면서 전화도 되고... 우리는 반가운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잠시 축제의 기분까지 맛보았다.
다음은 텔레비전. 인터넷TV를 보려면 텔레콤 회사에서 보내주는 TV박스가 필요했다.
우리 집의 경우, TV안테나선이 달라서 그동안 공중파 TV도
못 봤었기에 하루빨리 TV박스가 배달되기를 학수고대했다.
베아트리체는 인터넷이 개통된 다음 날부터 곧 TV박스가 갈 거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용기를 내서 프랑스 텔레콤 회사를 찾아갔다.
우리에게 온 서류를 보여주면서 왜 TV박스가 안 오는지 물었더니...
세상에! 이리저리 알아보던 직원이 하는 말.
담당자가 TV박스 보내는 걸 깜박했단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게 끝이었다.
기막히고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프랑스어를 못하니 화를 낼 수도 없는 일.
다행히 직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영어를 못해서 더 미안하다나?)
다시 TV박스를 신청해주었다.
넉넉잡고 일주일만 있으면 TV박스가 배달된다니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다시 신청을 해서 받은 TV박스>
인터넷에 얽힌 사연들도 참 가지각색이다. 선옥씨네는 우리보다 더 먼저 이사를
하고 인터넷을 신청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 문의를 해 봤더니
신청서류가 미비해서 그냥 버려버렸다나?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신청서류가 미비하면 전화를 걸어서 부족한 서류를 첨부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보통인데 전화 한 통 없이 서류를 그냥 버렸다니...
이렇게 시스템이 엉망인 나라 프랑스가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이라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결국 선옥씨네는 통신회사를 바꾸어서 4개월 만에
인터넷을 개통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신기록이다.
TV박스는 3일 만에 왔다. 무사히 설치를 마치고 드디어 TV를 켰다.
다양한 채널이 난무하는 프랑스 텔레비전. 볼거리도 많지만 왜 이렇게 낯선 것일까?
프랑스어와 친해지려면 무조건 잡지책을 읽고, 몰라도 TV를 계속 들으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하루빨리 TV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는데...
그동안 TV없이 살았던 습관 때문일까? 이상하게 TV를 안 켜게 된다.
남편도 TV만 되면 신날 줄 알았는데 왠지 시들한 반응이다.
말이 안 통해서 그런가? 아! 새삼 재미있던 우리나라 방송이 그립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2/ 전기요금 내기도 힘들어라~
프랑스생활 3개월이 지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말이 있다. 삶과 여행은 다르다.
비자도 필요 없이 유럽을 돌면서 여행을 즐긴다면 이곳은 참 아름답고 정취어린
도시다. 유서 깊은 역사와 현존하는 삶이 멋스럽게 어우러져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러나 사랑은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듯 이곳에서의 삶도 절절한 현실이다.
어쩌다가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용감하게 살겠다고 덤볐는지 무모한 용기에
스스로 감탄할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궁하면 통하고, 삶은 어떻게든 꾸려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번 일도 그랬다.
집을 얻고 나서부터 프랑스의 전기회사와 텔레콤 회사 그리고 우체국 등등에서
이런저런 서류들이 마구마구 날아오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된 서류를 받아든
우리는 우선 한숨부터 나온다.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서 해석을 해보지만
번역이 정확하지 않아서 통 뭔 소린지..할 때가 많다.
대충 감으로 내용을 짐작하자니 속이 꽉 막히고 답답한 신세다.
얼마 전, 프랑스 전기회사(EDF)에서 서류가 잔뜩 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사인을 해서 보내란다. 남편은 짐작으로 계약을
하자는 말이구나 생각하고 무조건 사인을 해서 보냈단다. 그런데 다시 날아온
편지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한 달에 50유로씩 전기요금을 내는
정액요금제를 선택했단다. 오잉? 그런 적 없는데? 그렇다면 사인을 해서 보낸
편지가 그런 내용이었단 말인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1년 동안 한달 전기요금을 50유로씩 내는 걸로 확정이 됐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내는 수밖에...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전기요금은 두 달치씩 부과된다. 하마터라면 2달에 1백유로는 낼 뻔했다.으악~>
아니, 네 식구 사는 집도 한 달 전기요금이 30유로 정도라는데 우리 두 식구가
살면서 웬 50유로? 게다가 우리는 한국에서도 전기요금이 2만원을 넘지 않았던 알뜰가족인데...
(이 부분이 중요하다. 우리는 에어컨만 없을 뿐이지 전기제품은 없는 게 없다.
TV도 두 대고, 냉장고도 크고 김치냉장고도 욍욍 잘 돌아간다.
컴퓨터도 노트북과 데스크 탑 두 대를 모두 썼었다. 다만, 온 가족이 알뜰한
스타일이라 모든 전기제품이 절전형이고 전기를 쓰지 않을 때는 꼭 꺼두는
좋은 습관을 갖고 있고... 그 습관 때문에 전기요금이 적게 나오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빠리에 사는 친구 미순에게 sos를 청했다.
EDF에서 온 편지를 스캔을 떠서 그녀에게 메일로 보내면서
EDF가 전기사용 신청료 33.50유로를 두 번이나 떼어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새로 이사를 하고, 내가 쓴 전기료만 내면 되는데, 이 나라는
새로 이사를 하는 것과 동시에 전기 신청료를 내야 한단다. 생돈이 나가는 것
같아서 아까운데 웬수 같은 EDF가 신청료를 두 번이나 떼어갔으니 기막히다.
미순이는 편지를 읽은 후에 EDF에 전화를 해서 계약내용을 바꾸고, 잘 못 가져간
신청료도 다시 돌려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한 번 계약한 건 다시 바꾸기
힘들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잘 됐다. 고맙다. 만약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고스란히 쓰지도 않은 전기요금을 내면서 투덜투덜 스트레스를
잔뜩 받으면서 살았을 거다. 다행이 이번 일은 친구 덕분에 잘 풀렸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이 산 너머 산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 어느 세월에 나도 능숙하게 편지를 읽고,
업무처리를 하고, 전화를 걸어서 항의도 할 수 있을까?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