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기/나의 이야기-2007

2007년 프랑스로 떠나다2

비올렛뜨 2009. 6. 11. 21:04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왜 이렇게 인간이 간사스러운 건지...

막상 프랑스로 떠나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두려움이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아들! 솔직히 남편보다 아니 내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인데...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내 아들과 5년을 떨어져서 살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리 서울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만난다고 해도 매일매일 부딪치면서 밥해주고, 속옷 빨아주면서

아들을 키우는 어미 노릇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남편 역시 아들의 성장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걸.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곳 생활을 잘 마무리 짓고

무사히 프랑스에 안착하는 일이다.

그래...남들은 조기유학도 보내는데 뭘 그래. 아들은 유학 보낸 셈 치지 뭐. (아니. 우리가 유학을 가는 건가?)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우리는 프랑스로 출발할 준비를 시작했다.



버려지는 삶, 내가 원하는 삶

이사를 준비하면서 끝도 없이 쏟아지는 버릴 물건들과 씨름을 하고 있다.

결혼하고 네 번째 이사. 결혼 23년 만에 이사를 네 번만 했다면... 에게 겨우?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사와는 별로 상관없이 살았다. 더구나 지금까지는 집을 넓혀서만 이사를 했기 때문에 짐을 버리고

줄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짐들을 미련하도록 끌어안고 산 셈이다.

어머니의 55년이 넘은 세간과 나의 23년 된 살림이 뒤엉킨 우리 집의 살림살이는 가히 골동품 수준에 가깝다.

남들이 보면 당장 내다버려야 할 살림살이지만 우리 눈에는 세월의 무게만큼 소중하고 추억이 묻어있는

것들이다. 이런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사소한 물건 하나도 못 버리는 소심한 성격 때문일까?

우리 집은 낡았지만 추억이 잔뜩 묻은 정겨운 물건들로 늘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의 프랑스행은 이삿짐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지금보다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서울과 프랑스 두 곳에서 이중으로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연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 끌어안고 살았던 살림살이를 버리고 줄여야 하는 일이다.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은 나의 자료들. 18년 세월을 품고 있었던 소중한 자료들을 가차 없이 미련 없이 버렸다.

내 작업실의 큰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자료들과 원고들을 폐지로 날려버렸다.

그동안 애지중지 살붙이처럼 아끼며 간직했던 것들인데 한 순간에 마치 오래된 연인을 헌신짝 버리듯

버린 것이다. 안녕~ 나의 소중했던 원고들이여... 안녕~ 나의 구성작가 시절이여...

나는 독기를 품은 사람처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소중한 내 추억들과 이별을 했다.

(세상에.. 원고들을 다 버리고나니 작가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협회 안에 도서관자료실을

만들어서 원고들을 보관해 준다나? 에고~ 며칠만 더 빨리 전화를 주시지...)


그리고 다음으로 빼어든 칼은 옷장으로 향했다. 최고의 멋쟁이는 아니었지만, 나의 옷장은 늘 만원사례였다.

수많은 정장과 블라우스 그리고 니트들.. 겨울 코트는 또 몇 벌인가... 여자들이 단골메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옷장에 걸린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은 마땅치 않아... 내 경우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 이런저런 이유로 사들인 옷들과의 동거를 끝낼 시점이 된 것이다.

프랑스에 가져갈 옷을 제외하면 5년 동안은 거들떠도 안 볼 옷들이고,

그렇게 되면 유행이 지나가서 못 입게 될 것이 뻔한 옷들이다. 눈물을 머금고 가차 없이 옷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깝다. 이게 얼마짜린데... 이 옷과는 또 얼마나 정이 들었는데... 내 속이 속이 아니었다.

 

자료들을 버릴 때와는 달리 눈물 한 방울이 톡 떨어지려는 찰라, 남편이 냅다 신경질을 낸다.

왜 이렇게 많은 옷들을 샀느냐, 왜 이렇게 아까운 옷들을 버리느냐, 당신이 이런 낭비를 하면서 살았다니

정말 실망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었다.

그래. 나도 안다. 나의 사소한 멋 내기가 얼마나 많은 자원낭비로 이어졌는지를. 그런데 나만 이럴까?

일하는 여자가 이 정도 옷도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나도 버려지는 옷들이 아깝다.

더불어 옷 몇 벌로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패션화 된 우리 사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패션산업이 활발하게 돌아가야 우리나라가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지 모르지만 그에 따른 자원낭비는

내가 생각해도 아찔하다. 더구나 요즘 유행하는 패스트 패션은 자원낭비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것 같다.

싼값에 옷을 사서 한 시즌만 입고 버리는 패션. 팰리스 힐튼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일회용품

취급하는 일은 가히 지구환경을 해치는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나 역시, 충동구매 한 옷을 딱 한 번 입어보고 옷장 속에 처박아둔 것이 한 두 벌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옷들을 과감하게 버리겠다고 칼을 빼어든 것이다.


옷을 버리면서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새로 시작하는 삶에는 낭비와 사치를 빼버리자.

더 이상 새로운 옷을 사느라 자원낭비를 하지 말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내면을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내가 가져간 옷이면 충분해. 그걸로 5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

그런데, 과연 이런 나의 결심이 작게는 가정경제를 위하고 크게는 자원낭비를 막아 지구환경을

생각하겠다는 이 결심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글쎄, 그건 프랑스에서 살아보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