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소녀-완팅
완팅이 가져온 김치
완팅은 18살짜리 타이완아이다.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유학을 왔고,
2년 정도 어학과정을 마친 다음에 프랑스 미술대학에 진학할 꿈을 안고 있다.
어느 날, 완팅이 수줍게 말을 걸어왔다.
"친구랑 같이 김치를 만들었는데... 맛을 좀 볼래요?"
오잉? 완팅이 김치를?
완팅은 친구들과 함께 김치를 담근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프랑스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해서 그런가
그녀는 제법 프랑스어를 잘한다) 김치를 내놓은데... 허여멀건 백김치다.
온 동네 슈퍼마켓을 다 뒤졌으나 고춧가루를 못 사서 그냥 고춧가루 없이 김치를 담갔단다.
배추를 절이는 것도 몰라서 소금을 넣고 배추를 팍팍 주물러서 딱딱한 배추를 흐물거리게 했다나?
방법이야 어찌됐든 외국인인 완팅이 김치를 담갔다니... 신통방통했다.
<우리반 귀염둥이 완팅 -오른쪽 맨 앞>
“아니..어떻게 김치를 담글 생각을 다했어? 신통해라..."
“그냥, 한국 친구한테 배웠어. 힘들지만 재미있던걸~”
생선소스와 파, 마늘 그리고 당근까지 넣고 담갔다는 김치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우리 김치와 전혀 다른 맛이지만, 김치를 직접 담가서 먹겠다는 그녀의 성의가 놀랍다.
수업이 끝난 후, 완팅과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나라 음식이야기를 계속했다.
완팅은 타이완에 있을 때 한국음식을 많이 먹어봤단다. 일이 바쁜 엄마덕분에 모든 끼니를 밖에서
해결해야 했는데, 그때 한국음식점에도 자주 다녔나보다. 한국 떡볶이와 김밥도 먹어보았고,
특히 미역국이 맛이 있었단다. 우리나라 유학생들도 힘들고 귀찮아서 김치를 담가 먹는 건 엄두도 못 내는데...
타이완소녀가 우리 김치를 담가 먹는다니 참 기특하다.
나는 중국음식을 잘 모른다. 그런데 어린 완팅이 우리 음식을 많이 아는 건 무슨 차이일까?
외식을 많이 하는 타이완의 문화 탓일까? 아니면 그녀의 취향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우리 음식이
세계 각국으로 많이 퍼져나갔다는 자랑스러운 결과일까? 드라마에 이은 음식이야기까지...
우리나라에 깊은 관심을 보내고 있는 중국인들이 조금은 신기하다.
(타이완인도 중국인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반에서는 중국인들과 타이완인들이 엄청난 단짝 친구처럼
굉장히 친하게 지낸다.)
며칠 후, 완팅에게 답례를 하는 마음으로 고춧가루와 휴대용미역국을 선물하고 새로 담근 김치를
가져다주었다. 진짜 한국식 김치(대한민국 아줌마가 직접 담근 김치니까) 맛을 본 완팅은
너무너무 맛있다면서 감격에 젖는다.
그 모습을 보니,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미역국을 폴폴 끓여서 맛난 김치와 함께 대접한다면 정말 좋을 텐데...
웬수같은 시간이 문제다. 공부에 쫓겨서 남편 밥해주는 것도 힘든 것이 내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녀에게 밥을 해주고 싶다는 말을 꿀꺽 삼켜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