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렛뜨 2009. 7. 20. 18:55

 

올가의 초대.

올가가 점심을 먹다가 불쑥 집으로 초대를 하겠단다.

선옥씨랑 내가 메종(단독주택)에 사는 그녀를 부러워하자 자기 집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나보다.

하여간, 어떨 결에 우리는 약속을 했다. 디데이는 3월15일. 내 남편이 한국으로 휴가를 가고,

그녀의 남편이 러시아로 출장을 간 일요일이다. 선옥씨 남편은 왜 하필 일요일에 약속을 잡았냐고

투덜투덜했다지만 애처가인 그녀의 남편은 우리를 마노스크에 있는 올가네 집까지 태워다주고

데려오는 기사노릇까지 톡톡히 했다.


 

 

 

                  <우리가 자주 가던 학교근처 까페. 빵집이지만 간단한 음식도 주문할 수 있다>

 

 

올가네 메종은 듣던 대로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그림같은 집이다.

지대가 높아서 전망이 끝내주고, 집도 멋지다.

프랑스에 왔으면 이런 메종에서 살아봐야 하는데 하는 욕심이 절로 생긴다.

집세도 엄청 싸다. 한 달에 1천유로. 만약 엑스였다면 1천5백유로는 족히 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집안을 둘러보던 선옥씨와 나는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아파트생활에 익숙해서 그런가, 보안이 허술해 보이는 메종은 어쩐지 무섭다.

만약 도둑이라도 들면? 생각만 해도 겁난다. 얼마 전, 메종에 사는 남편 회사 동료의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미니 삼층 구조인 올가네 집 구경을 하면서.. 그녀의 성격이 보기보다 털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같으면 집에 손님이 온다면 집안을 쓸고 닦고 난리를 했을 텐데...

집안은 그닥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 정도가 미리 치우고 신경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편안하고 좋아 보인다.


 

 

 

우리는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샴페인을 마시고, 티타임을 즐기면서 계속 수다를 떤다.

올가와 우리는 어느 새 정이 듬뿍 든 친구가 됐다. 그닥 유창한 프랑스어는 아니지만

우리끼리는 못하는 말이 없다.(말이 막히면 사전을 찾느라 바쁘지만...)

하여간, 여자들의 수다는 국적도 초월한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에 갑자기 올가가

사진 몇 장을 가져온다. 사진 속에는 예쁜 여자가 귀여운 아기를 안고 있다.

다른 사진은 올가의 남편이 여자와 아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기를 안고 즐거워하는 올가남편의 사진도 보인다. 오잉? 이게 웬 시추에이션?

 

“아기가 참 귀엽다... 그런데 누구야?”

“우리 남편 딸이랑 손녀딸.” 올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올가네는 마흔 살 동갑내기 부부다.

두 사람은 러시아의 휴양도시로 휴가를 갔다가 영화처럼 만났다는데,.

그녀는 키 크고 잘생긴 남편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단다.

예쁜 처녀의사가 이혼남과 결혼을 하는데도 집안의 반대가 별로 없었다니... 문화의 차이인가?

그런데 올가 남편이 전처와 사이에 딸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딸이 벌써 결혼을 해서 손녀까지 낳았다니... 잘생긴 그녀의 남편이 할아버지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러시아는 조혼이 많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다. 

 

올가의 남편이 할아버지면 올가 역시 할머니다.

우리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벌써 할머니라니...ㅋㅋ

그날, 올가의 초대는 올가가 할머니가 됐다는 소식으로 더 즐거웠다.

우리 같으면 쉬쉬했을 일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솔직함이 빛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