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서 프로방스 꼬따쥐흐를 누비다3
여자 셋이서 프로방스 꼬따쥐흐를 누비다3/ 앙티브, 니스, 생뽈, 깐느
4월23일. 일정에 없던 여정, 뜻밖의 즐거움
이른 아침, 민박집을 나와 앙티브 시내를 돌아본다. 어제 보았던 야경과는 느낌이 180도 다르다.
앙티브는 정말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지중해도시다. 여기서 더 놀까? 하는 갈등이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우리는 앙티브에서 니스로 가는 버스를 탄다. 요금은 1유로.
지중해를 따라 달리는 버스는 기차요금의 1/3가격이다. 환상이다. 단점이라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
니스까지 기차로 10분이면 가는데 버스로는 한 시간 걸린다. 지금같은 비수기에도 그 정도니 온 유럽의
자동차들이 몰려든다는 한여름에는, 이 노선을 절대로 이용하면 안 될 것 같다.
느릿느릿 달리는 버스를 타고 지중해를 바라보자니, 저절로 마음이 느긋해진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이곳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버스는 니스의 해변을 천천히 달린다. 더 환상이다. 버스가 드디어 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간표를 보니 에즈 마을로 가는 버스는 이미 출발했다.
<에즈마을 대신 찿아간 생뽈 드 방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이 마을의 정취를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 사진속의 쌩뽈은 우리가 느낀 쌩뽈과 다르다. 왜 그럴까?>
에즈로 가려면 앞으로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 무작정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
주변을 둘러보니 생뽈로 가는 버스가 곧 떠난다. 에잇! 계획을 바꿔서 무조건 생뽈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니스에서 생뽈까지는 55분. 산길을 따라서 달리던 버스에서 내리니 산 정상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마을이
숨어있다.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미로처럼 꼬불꼬불 이어지는 좁은 길의 양쪽에는 16세기에 지어진 돌집들이 나란히 서 있다.
어디를 봐도 그림이다. 줄지어 들어선 기념품가게며 작은 갤러리를 둘러보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신나서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는 사이, 시간은 로켓을 탄 듯 빨리도 지나간다.
지금 깐느로 가는 건 무리다. 그래! 그냥 니스로 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마을 풍경에 취해서 점심 먹는 것도 잊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는 없다.
보통 2시간 걸리는 프랑스식 점심식사를 하다가는 버스를 놓치기 쉽다.
늦은 점심은 니스에서 먹기로 하고 생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에너지보충을 위해 비상식량으로 준비해온 사과를 한 입 베어 먹는다.
그 순간 갑자기 잔머리가 살살 굴려진다. 구름 떼처럼 모여선 관광객들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니라
이대로 버스를 탔다가는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없을 것 같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40분 남았다.
그래, 여기서 종점인 방스까지 차로 5분 거리라니까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겠지?
에잇! 가 보자. 가이드의 권력을 이용해서 반대를 하는 두 사람을 이끌고 길을 나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무리 산길을 걸어가도 마을이 안 보인다.
‘기드한테 사과를 괜히 먹였어’ ‘대체 이 길의 끝이 있기는 한 거야?’
앞장서서 씩씩하게 산길을 걷는데 뒤에서 투덜투덜 끙끙거리는 소리가 계속된다.
‘안되겠다. 다시 돌아가자’ 선배가 드디어 다시 돌아가자는 소리를 한다.
‘안돼!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많이 온 것 같아.’ 고집을 피우며 산길을 계속 걸어가는데
구사일생으로 시트로엥C5 자동차가 멈춰 선다.
아마, 젊은 영은이가 지나가는 차를 향해 머뭇머뭇 히치하이킹의 제스처를 보낸 것 같다.
운전자는 나이 지긋한 프랑스할아버지다. 안심하고 그의 차에 냉큼 올라타고 방스마을로
향하는데... 차로 가도 먼 거리다. 으윽~ 이거 차로 5분 거리 맞아?
친절한 프랑스할아버지는 우리를 니스행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신다.
프랑스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친절한 분들이 많다. 나도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외국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겠다는 반성을 한다.
우리는 무사히 니스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물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버스가 생뽈마을 앞에 서자 역시나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있다. 우히히히 흐뭇하다.
신이 난 우리는 아름다운 산길을 따라 달리는 버스에서 마구마구 수다를 떤다.
그때 누군가 뒤를 돌아보면서 ‘한국인이세요?’하고 묻는다. 혼자 여행 중인 서른 살의 수원처녀다.
졸지에 한국여자 넷의 수다가 시작된다. 우리는 즉석에서 계획을 수정, 니스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하고
그녀가 묵고 있다는 유스호스텔로 따라 나선다.
<니스 구시가지. 약간 꼬질꼬질한 곳이다. 조금만 가면 아기자기한 골목길도 나온다>
니스를 떠나는 것이 아쉬웠던 우리는 니스 해변을 더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뜨기 시작한다.
유스호스텔에서 배낭여행자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진다. 음하핫!
갤러리아 라파에트 뒤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나름 깨끗하다. 새로받은 시트도 정갈하다.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자, 점심을 굶은 배가 아우성이다.
<유스호스텔 근처의 마세나광장>
우선 니스시내로 나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사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어제, 해변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던 바다와 또 다른 맛이다.
하염없이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다가 니스시내 구경을 하고 유스호스텔로 돌아오니 8시 반이 넘었다.
조건은 열악해도 샤워는 해야겠지? 대충 씻고 나오니(호텔만 다녀서 그런가? 정말 샤워시설이 열악했다)
산뜻하다. 피곤한 몸을 누이려는데 두 사람은 그냥 자기가 아쉬운가 보다.
로비에 내려가서 기분을 내잖다. 하긴, 니스의 밤을 잠만 자면서 보낼 수는 없지?
유스호스텔 로비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그런가 테이블와인의 맛도 환상이다.
프랑스포도주에 푹~ 빠진 두 사람은 안주도 없이 포도주를 홀짝인다. 느닷없이 바뀐 오늘일정이
즐거운 눈치다. 나도 그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비는 여행자들로 바글거린다.
저마다 즐거운 사연을 늘어놓는 듯하다. 그러나 여자 셋이 여행 중인 우리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
4월24일. 에즈마을은 영영 멀어지고...깐느로 가다.
아침 9시. 에즈마을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 서두르며 아침을 먹는데, 우리를 유스호스텔로 인도했던
수원처녀가 짠 나타난다. 어제 밤에 우리를 찾아다녔는데 못 만났다면서 서운해 한다.
에고~ 우리는 그녀가 덜컥 따라나선 아줌마 셋이 무서워서 도망갔나 했는데...그게 아니었나보다.
그녀는 혼자서 여행하면서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우리는 아쉬워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부지런히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오늘은 꼭 에즈행 버스를 타야한다.
그런데, 버스가 또 안 온다. 이게 뭐야? 버스는 예상시간을 45분 넘겨서 왔다.
기다린 시간이 한 시간이 넘은 우리는 슬슬 짜증이 난다. 게다가 버스운전사는 5분 후에 떠나겠다며
돈통을 들고 내리더니 15분이 지나도 안 온다. 으윽~ 웬수 같은 에즈여...
우리는 즉석에서 에즈마을을 버리고 깐느로 가기로 한다.
깐느행 버스에 몸을 싣고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길을 달린다.
버스는 도중에 우리가 묵었던 앙티브 민박집을 지나쳐서 한 시간 반이 넘게 달린다.
1유로짜리 버스는 역시 느릿느릿 여유만만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니스역에서 기차를 탈 걸...
잠깐 후회를 했지만 소용없다. 깐느에 도착하자마자 엑스로 가는 차표부터 끊었다.
엑스까지는 테제베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세 사람 차비가 91유로?!
모나코까지 갔던 테제베 표(80유로)보다 더 비싸다. 이제, 깐느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영화제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깐느의 상징인 행사장 계단에 레드카펫이 없다.
깐느영화제를 앞두고 드라이클리닝을 맡겼나? 하는 소박한 추측을 해 본다.
깐느의 쇼핑거리와 깐느의 바다를 여유 있게 즐기다니 신난다.
해변에는 벌써부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일광욕은 못해도 지중해 그것도 깐느 바다에
발은 담가야지? 발을 벗고 해변을 살짝 걸었다. 시원하다...
영은이는 깐느에서 세련된 디자인의 핸드백을 산다. 멋지다.
알뜰한 우리는 빵 가게에서 이것저것 맛있는 샌드위치를 잔뜩 사들고 테제베에 올랐다.
테제베를 자주 타다보니 이제 능숙하다. 방송하는 소리도 쏙쏙 잘 들리고,
기차가 서는 위치도 빠삭하게 파악했다. 우리가 탄 테제베는 엑스를 거쳐서 빠리까지 간다.
그러니까 어디서 내려야할지 잘 체크해야 한다. 지중해를 따라서 달리는 기찻길은 정말정말 환상이다.
니스로 갈 때는 찐 계란을 먹었는데...지금은 다양한 샌드위치 덕분에 입이 행복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다. 무사히 테제베 역에 내린 우리는 엑스버스터미널까지 나바떼(셔틀버스)를 탄다.
그리고 터미널에서 우리 집까지는 30분을 걸어야한다.
"우와! 드디어 우리가 세누(chez nous)에 왔어! 쉐누~ 쉐누~ "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 쉐누~ 정말정말 좋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두사람은 피곤한 줄 모르고 쫑알쫑알 우리집 예찬을 시작한다.
푸하핫! 두 사람이 나보다 더 우리 집을 그리워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