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에 둥지를 틀다3
집 없는 서러움
비올레뜨(violette)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겠다는 결정을 했다.
프랑스에 온지 한 달 열흘 만의 일이다. 그동안, 집을 구하러 다니며 얼마나 집없는 설움을 겪었던지...
엄청난 집세에 비해서 왜 그렇게 낡고 허술한 집 투성인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익숙한 우리에게 수도꼭지만 달랑 있는 싱크대가 전부인 부엌처럼 프랑스 집들은
내 상식을 벗어나는 곳이 많았다. 물론,엄청난 월세를 지불한다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월세에 익숙치 못한 우리에게 매달 170만원이 넘게 나가는 월세를 지불하고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니...불공평한 일이다.
하여간, 집을 찾느라 한 달 넘게 고생을 했고... 좁다고 투덜거리던 호텔에서 쫓겨날 위기를 모면하면서
어렵게 만난 집이다. 오래된 아파트고 방이 하나 밖에 없는 악조건이지만 깔끔하고 엄청 넓은 거실이
마음에 들었다. 행여 지난 번처럼 계약이 잘못될까봐 부동산이 있는 자리에서 흔쾌히 오케이를 날렸다.
아마도 집이 비어있어서 곧 이사를 할 수 있다는 것과 시내와 가까운 동네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남편은 조건에 비해서 집세가 비싼 편이라고 투덜거리지만 나는 좋다. 방이 하나인 대신 붙박이장도 넉넉하고,
거실도 운동장만하다. 낡았지만 나름 벽지도 발라져있다. 화장실과 욕실은 오래된 집이라는 티가 팍팍나지만
어쩌랴. 깨끗한 새집에서 못 사는 건 아무래도 내 팔자인 것 같다.
그래도 팔자는 변한다는데... 나중에 분당으로 돌아가면 수리를 한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겠지 뭐.
어럽게 집을 구하면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풍의 전망과 동네를 느끼면서 살고 싶은 것! 다행히 이집은 방에서 바라본 전경이 멋지다.
이만하면 만족하면서 살 것 같다. 거실에서 본 풍경은 커다란 나무가 바라보여서 그냥 숲속에 사는 느낌이다.
집도 시내랑 그다지 멀지 않다. 센터까지 10분 정도면 갈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좋게만 느껴지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문제는 계약이 잘 되느냐하는 것! 이 나라 사람들은 집을 얻는데도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별별 것을
다 요구한다. 남편이 우선 갖고 있던 서류들(국제기구 직원이라는 증명과 연봉까지 표시된 서류,
여권을 카피한 서류 등)을 주었는데도 9월에 받은 월급명세서도 내놓으란다.
그러면서도 부동산 여자는 자신의 부동산에이전시 사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집을 계약할 수 있다는
멘트를 날리고 사라졌다. 으윽~ 또 불안해진다. 지난번에 계약을 취소당한 경험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계약여부는 월요일에 알 수 있다니 불안한 주말을 보내게 생겼다.
그래도 이 집은 어쩐지 나와 인연이 있을 것 같다. 제발... 계약이 무사히 이루어져서
집 없는 서러움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
집 없는 서러움 그 후.
프랑스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니...하루에도 몇 번씩 집 문제로 혈압이 올랐다가 내렸다가 한다.
우리가 특별히 운이 없는 건가, 끝까지 집 때문에 고생이다. 비올레뜨의 집을 계약하기까지 두 세 번 계약이
깨졌다 붙여졌다를 반복하며 변덕을 부리다가... 겨우, 계약을 하게 됐다. 치사하기가 하늘을 찌른다.
까탈을 부리던 부동산 에이전시 사무실은 우리가 매일매일 산책을 다니던 꾸우 미라보에 있었다.
사무실은 겉보기는 멀쩡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낡은 티가 팍팍 난다. 사무실 내벽이 떨어져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부동산 에이전시라면 우리나라로 따지면 흔하디흔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인데... 분위기는 영 다르다.
직원 두 명이 칸막이 데스크에 앉아있고, 계약자인 우리는 서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어있다.
우리를 소개한 베아트리체와 우리 부부는 어정쩡하게 서서 부동산 직원들과 영어, 프랑스어를 섞어가면서
대화를 했다. 그들은 미리 가져간 서류를 근거로 작성한 계약서를 내밀면서 이곳저곳을 적으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된 계약서는 외계인 문서처럼 생소하다. 어렵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니, 이게 전부가 아니란다.
우리가 작성한 서류를 갖고 부동산 에이전시 사장한테 결재를 올려야 한단다.
사장이 결재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계약은 없던 일이 된다나? 사장의 결재 여부는 내일 전화로 알려주고,
만약 계약이 성사되면 수요일이나 목요일 날 이사를 할 수 있단다.
세상에.. 이렇게 고압적인 부동산 에이전시가 존재하다니. 대한민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소파나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차 대접을 받고, 거드름까지도 피우면서 부동산 계약을 하는데...
여긴 뭔가? 부동산 직원은 떡하니 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지시하듯 일을 하고 계약자인 우리는
어정쩡하게 서서(앉을 자리나 공간도 없다) 사정하듯이 계약을 하다니 뭔가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 된 것 같다. (이 부분은 내가 경험한 부동산사무실만 그랬는지, 다른 곳도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서비스 정신이 없다고 난리였는데.. 프랑스와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서비스 천국의 나라다.
적어도 계약자가 대접을 받을 수는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