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아버지는 무서울 정도로 침묵했다.
평소 같으면 쪽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난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며 펄펄 뛰었을 텐데, 침울한 표정만 지었다.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엄마한테 아직 연락 없어요?”
“없다.”
그뿐이었다. 퇴근길에 친정에 들렀던 미양은 아버지의 침묵에 짓눌려 답답한 가슴만 안고 돌아왔다.
엄마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불안한 마음의 표현처럼 아버지한테 전화를 거는
횟수가 잦아졌다.
“저예요.”
“그래.”
“뭐하고 계세요?”
“그냥 있다.”
“외할머니한테는 엄마 이야기, 못했어요.”
“잘했다.”
“혼자 지내기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다.”
아버지는 화가 나 있었다. 분명, 엄마 때문에 화가 났고 그 화를 억누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불안했다. 평소처럼 불같이 화를 내며 집을 나간 엄마랑 당장 이혼할 거라고 소리라도 지르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혹시 두 분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일은 무슨……”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하긴, 일이 있었더라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 감히 아버지의 권위에 이런 식으로 도전장을 내밀 위인도 못 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계속 물어도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신 가사도우미를 구했으니 더는 집에 들르지 말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는 미양의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전해주는 아버지 소식도 침울했다.
미양은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엄마를 찾아다녔다. 엄마가 머물고 싶어 했던 내소사 주변을 시작으로 엄마가 좋아했던 산사와 근처의 작은 마을까지, 거의 두 달간 미양은 엄마가 갔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엄마를 찾을 거라는 희망은 없었다. 그냥 넋 놓고 앉아있을 수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무의미한 일이야.”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을 걸으며 미양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재작년에 담양사람과 재혼한 엄마 친구를 만나고 가던 길이었다.
“우리, 그냥 장모님을 믿고 기다리자.”
그녀의 남편이 오랜 망설임 끝에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돼. 대체 엄마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왜 숨었다고 생각해?”
“자기는 엄마가 쉬고 오겠다는 말을 믿는 거야?”
“안 믿으면?”
미양은 무의미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를 찾아다니는 일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제 이 일도 그만두어야 할 시점이었다.
“차라리 장모님을 인정해주고, 장모님의 결정을 지지해주자.”
엄마를 인정해주고, 엄마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익숙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작정하고 숨어버린 엄마에게 못 찾겠다며 백기를 드는 일이 더 나았다. 항복은 해도 타협과 화합을 꾀할 수 없는 것이 그들 모녀 사이였다.
그즈음 아버지가 침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기록을 확인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중에 엄마가 다녔다는 신경정신과 병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는 병원을 찾아갔고, 엄마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너도 알고 있었니?”
아버지가 오랜 투병생활을 한 환자처럼 힘없이 물었다.
“아니요. 전혀 몰랐어요.”
“네 엄마가 우울증을 앓았다는데…… 그걸 몰랐네.”
수화기 너머로 길게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더라.”
“네?”
힘없는 아버지의 사과에 미양은 흠칫 놀랐다.
“그동안 네 엄마한테 무심했던 것이 후회되는구나……”
말끝을 흐리던 아버지는 눈물을 감추며 돌아서는 연인처럼 뚝 전화를 끊었다.
엄마한테 무심했던 건 미양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가 예전보다 예민해졌고 툭하면 화를 낸다고 느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갱년기 증상 때문이려니 했다.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니, 미양은 미안하기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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