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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나, 유학생 맞아?

'봉주흐' 대신 '안녕?!'

 

 

 씨는 'Bonjour~' 대신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나보다 성격이 시원시원한 선옥씨가 우리 반으로 오자마자 친구 만들기에 돌입했다.

보기보다 덜 사교적인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인사 정도만 나누고 데면데면 지냈는데,

역시 성격 좋은 그녀는 달랐다.

사실, 나도 우리 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나이 많은 아줌마라는 자격지심과

우리 반 아이들의 프랑스어실력이 별로라 말을 해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로 지냈었다. 특히, 같은 반 중국인, 일본인들과는 더 더욱 친하지 못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그랬다. 안 그래도 동양인이 많은 반에서 동양인끼리만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반으로 이사를 온 선옥씨가 첫 시간부터 방긋방긋 웃으며 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잉? 평소에는 불어를 못한다며 엄살을 하던 선옥씨가 저렇게 오랜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건너편에 앉아있어서 소근거리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수다가 한창이다. 

그리고 잠시 후,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히 계세요”

“응. 그래 잘 가~”

 

아니 이게 왠 시추에이션? 갑자기 들린 한국말에 놀라서 다가가보니 그녀들은 지금까지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했고, 그 내용은 우리말을 배우는 것이었단다.

아니? 씨가 한국말을 한다고?

 

 

 

 

씨는 쓰촨성 출신의 귀여운 중국처녀다. 중국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이곳 프랑스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1년짜리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프랑스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는 중이다.

오동통하고 귀여운 외모에 늘 먹을 것을 들고 다닌다. 

그동안 씨는 한 번도 내게 한국말을 물어 본 적도 없었고, 자신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말도 않했다. 

왜 그랬을까? 내 인상이 차가워서 내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었나?

(이건 내 스스로 해보는 위안이다)

 

중국인인 씨가 한국어에 관심이 많고, 한국어를 잘 하는 이유는 바로 드라마 때문이란다.

한류 드라마 열풍이 굉장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내가 직접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드라마 광 팬인 씨는 드라마를 보면서 익힌 한국어실력이 제법이다.

게다가 관심도 많아서 틈만 나면 우리에게 말을 물어본다.

덕분에 우리 호칭도 바뀌었다. 우리반 도훈이는 오빠, 우리는 언니라고 부른다.

같은 동양권이라 그런가 씨를 비롯한 아이들은 아줌마인 우리 이름을 부르는 것이 껄끄러웠나보다.

젊은 언니 선옥씨가 '아줌마' 대신 '언니'라고 부르라고하자...

그날부터 신이 났다. 우리만 보면 '언니!' '언니!'하고 씩씩하게 불러댄다.

 

프랑스어를 배우러와서 졸지에 한국어를 가르쳐주게 될지는 몰랐었다.

참 대한민국 드라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원고를 다 써놓고,

드라마 제작도 못하고 날려버린 나의 ‘진황의 사랑’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만약, 그 드라마가 제작이 되고 히트를 했다면... 나의 인생도 달라졌을까? 갑자기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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