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계절
내일부터 서울에 있는 아들의 시험이 시작된다. 본과 1학년 2학기 마지막 시험이다.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나 역시 시험이다. 아들과 엄마가 서울과 엑스에서 나란히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게 생겼으니 웃지 못 할 코미디다.
그동안 테스트를 좋아하는 우리 교수님덕분에 크고 작은 테스트를 여러 번 보았지만
이번 주가 본격적인 시험, 첫 중간고사인 셈이다. 학교를 다니니까 시험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고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시험을 본다니 은근히 스트레스가 생긴다.
이래저래 일주일, 아니 다음주 월요일까지니까 열흘은 마음이 편치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내 모습이 참 웃긴다.
시험공부를 한다고 문밖에도 안 나가고 교재에 코를 박고, 공부를 했더니 체력이 바닥났는지 몸이 축축 쳐진다.
공부는 또 어떤가, 그동안 복습을 한다고 했는데도 잊어버린 것이 대부분이다. 또 좌절이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 중년아줌마의 당연한 특권이라지만 어떤 때는 해도 너무한다 싶다.
어제 죽어라 외운 단어가 오늘 다시 보면 생소하니... 이런 정신으로 우째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한심하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중간고사를 본다는 것이 신선한 느낌이기도 하다.
ㅋㅋ 범생이 내 인생을 아주 잠깐 삐딱하게 만든 대학시절로 돌아간 느낌도 든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컨닝을 배웠고 컨닝을 해봤다.
1학년 1학기 논리학시험시간이었던가. 축제를 앞두고 농악대에서 공연준비를 하던 나는 툭하면
공연 연습하랴, 80년도의 혼란한 정치상황에 걸맞게 이념교육을 받으랴 수업을 빼먹는 일이 다반수였다.
시험공부를 못했는지 안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시험은 봐야하니까 시험을 보러 갔던 것 같다.
시험지를 앞에 놓고 앉았는데 한숨만 나왔다. 아는 게 있어야 쓰지...
이렇게 한참 앉아있는데 내 앞으로 툭! 꽁꽁 접은 쪽지가 날아왔다. 내 실험파트너가 보낸 컨닝페이퍼다.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찡긋 웃어준다.
여자친구도 있는 그가 나한테 흑심을 품고 이런 컨닝페이퍼를 보냈을 리는 없을 테고...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에잇! 지금 의미를 따질 때가 아니지. 이 보다 더 반가운 호의가 어디있담...
나는 그의 호의를 우정으로 받아들이고 반갑게 컨닝페이퍼를 펴들였다.
결국, 휴교령 때문에 제대로 된 시험성적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받은 컨닝페이퍼가
내 생애 첫 컨닝역사를 장식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 후로도, 전공시험을 보면서 가끔 컨닝을 했던 것 같다.
조교들이 말려도 소용없을 정도로 대 놓고, 책상에 실험식, 원자식 분자식을 써놓았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반공개적으로 컨닝을 했다고 해야하나?>
아마도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하느라 능률도 안 올랐고, 그 당시 컨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대학문화의 탓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시험은 나를 평가받는 것이다. 그 평가를 정정당당하게 받아야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인데,
나는 아니 우리는 그 정당성을 무시하고 우습게보았던 것 같다.
요즘도 대학에서 컨닝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편법을 써서라도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욕심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겠지?
하여간, 나는 내일부터 시험을 보기 시작한다. 솔직히 성적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어가 내 머릿속에 얼마나 남아있고, 내 혀끝에 얼마나 존재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생각과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막상 시험이라는 것을 본다니... 승부근성이 은근히 생긴다.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학생이 되더니... 내가 엄청 유치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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