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프로방스에 눈이 내렸습니다.
2주간의 꿈같은 크리스마스방학이 끝났다.
추운 날씨 때문에, 수술한 무릎이 완쾌되지 않았기 때문에, 밀린 프랑스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아무런 여행 계획 없이 편안하게 쉰 방학이었다. 먹고, 자고, 컴퓨터로 영화보고,
가끔 기분 좋게 포도주를 마시고, 아주 가끔 너무 노는 것 같다 싶으면 프랑스어공부를 했다.
방학동안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반도 못 지킨 셈이다. 푸하핫! 내가 그렇지 뭐...
그래도 푹~ 잘 쉬었다는 가뿐함으로 개학을 맞았는데 이게 웬일?
이틀 만에 또 다시 방학 아닌 방학이 시작됐다.
원인은 프로방스에 내린 눈! 프로방스에 내린 폭설은 도시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원래 프로방스는 햇살이 강하고 따뜻한 곳이라 겨울에도 거의 눈이 안 오는 곳인데
20년 만에 큰 눈이 내린 것이다.
화요일 저녁부터 일기예보에서 프로방스와 코뜨다쥐르 지방에 눈이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으나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수요일 아침, 새벽부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더니 곧 폭설로 인한 대란이 시작됐다.
아침 일찍 통근버스를 타러 나갔던 남편은 30분 동안 길에서 떨다가 돌아왔다.
(남편은 전 날, 회사에 차를 두고 왔었다) 눈 때문에 버스가 운행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 인터넷을 통해서 눈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알게됐다.
아니! 눈이 얼마나 왔다고?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무리 폭설이 내렸다지만 버스가 운행을 안 하고, 고속도로가 폐쇄되고, 회사가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이곳이 프로방스라서 일어난 일이다.
“세상에... 프로방스에 큰 눈이 내렸습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프로방스에 내린 눈을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댄다.
프로방스의 눈이 특종은 특종인가보다.
졸지에 휴가를 받은 남편은 신이 났다. 룰룰랄랄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 가는
나를 바래다주겠다는 호의까지 베푼다. 혹시 무릎이 아픈 내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넘어 질까봐 걱정이 됐던 것 같다. 우리는 푹푹 쌓인 눈을 밟고 학교로 향했다.
집 앞에 쌓인 눈이 30센티는 되는 것 같다.
학교 앞은 쌓인 눈과 우왕좌왕하는 학생들로 복닥복닥하다.
게시판에는 이런저런 공고가 붙어있다. 엑스에 사는 교수들은 출근이 가능했지만
막세이나 엑스 외곽에 사는 교수들은 출근을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막세이에 사는 우리 교수님도
출근을 못했다. 그러니까 오늘, 휴강이다. 뭐야~ 이깟 눈 때문에 학교도 휴강이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은근히 신났다. 밖에는 아직도 탐스러운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우리는 그 길로 쿠흐 미라보로 향했다.
눈 내리는 엑스시내는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다 큰 어른들이 여기저기서 눈싸움을 하며 신이 났다. 눈은 하루 종일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그 날은 마침, 겨울정기세일을 시작한 날인데... 눈 때문에 가게들은 한산하고 대신 눈을 맞으며
산책을 즐기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거리가 넘쳐났다. 프로방스에 내린 눈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그리고 눈의 축제는 다음 날까지 계속됐다.
다음 날도 아직 고속도로가 폐쇄된 상태라 남편은 출근을 못했고, 아침 일찍 학교로 갔던
나 역시 눈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수업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뭐야? 눈 때문에 수업을 못하면 비상연락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바랄 걸 바래야지. 여긴 프랑스잖아.”
하긴, 느릿느릿하고 권위적인 프랑스 학교가 이런 친절을 베풀어줄리 없지.
그런데 얄밉게도 학교 문은 후다닥 일찌감치 닫아건다. 여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아직도 눈 때문에 고속도로도 폐쇄된 상태라니까 이해해야지 했다.
하지만 셋째 날은 사정이 달랐다.
제설작업으로 눈이 어느 정도 녹았고 남편도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사실 눈을 녹인 주인공은
제설작업차가 아니라 프로방스의 태양이었다. 남프랑스에는 제설작업 기구가 거의 없단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학교로 갔는데 여전히 수업을 못한단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무뚝뚝한 비서가 오늘은 수업이 없다는 말만 한다. 왜 그러냐고 따져 묻자, 그냥 모른단다.
프랑스어가 능통해도 이런 상황이면 뭐라고 따지지 못하겠지만, 말이 서툰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돌아서는데 기분이 나빠진다. 개학하던 날은 방학이 아쉬웠는데, 막상 눈 때문에 다시
방학 아닌 방학을 하게 되자 슬슬 시간이 아깝고, 수업료가 아깝다는 본전생각이 난다.
사실, 한 학기가 거의 다 되어가지만 아직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더 화가 났던 것도 같다.
학교만 다니면 프랑스어가 술술 될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아니면 교육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지 나의 프랑스어는 도무지 진전이 없다.
남편은 말은 쉽게 되는 게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위로를 하지만...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진도가 나갈 줄 모르는 나의 프랑스어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교수님들이 내가 말을 끝까지 할 수 있게 기다려주지 않는 것도 문제다.
말을 하다가 버벅 거리면 그들은 알아서 내가 할 말을 해준다. 장단점은 있다.
엉터리로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나쁠 수도 있단다. 대신 교수들은 내가 하는 말을 교정해 준다.
어쨌든, 눈 때문에 나의 겨울방학은 일주일이나 더 늘어났다.
아깝지만 더 멀리 뛰기 위한 휴식으로 생각하고, 잘 쉬었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살아가기 > 나, 유학생 맞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학기가 시작되다 (0) | 2009.07.13 |
---|---|
설날 떡국잔치 (0) | 2009.07.13 |
크리스마스방학과 특별수업 (0) | 2009.07.10 |
시험의 계절 (0) | 2009.07.07 |
김치소녀-완팅 (0) | 2009.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