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으로의 코드 전환. 느림의 미학?
프랑스로 떠나기 전부터 ‘프랑스는 모든 것이 느리다. 그러니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부딪치고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은행계좌를 열고 수표책을 만드는데도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우리나라 같으면 순식간에 될 일들이
이곳에서는 며칠은 기본이다.
인터넷도 신청을 하면 한 달에서 두 달까지도 걸린단다.
신청하는 것과 동시에 개통되는 대한민국 인터넷에 익숙한 우리에게 천형과 같은 일이다.
이사 할 집을 구하는 일이며, 차를 신청하는 일 모두 한국에서처럼 빨리빨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성질 급하기로 유명하고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좍~ 해결해야 속이 시원했던 우리에게
프랑스식은 너무 가혹한 형벌과 같다. 그렇지만 어쩌랴... 발만 동동 구르면 우리 속만 타고 우리만 손해인걸.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바쁘게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 온 것 같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도 있는 듯하다.
부지런히 많은 것을 해야만 오늘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면, 프랑스 사람들은
천천히 느긋하게 해도 우리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조건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부를 덜 갖더라도 천천히 느긋하게 인생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보다 덜 일해도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가진 자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워해도 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느릿느릿한 프랑스에 못마땅해서 펄펄 뛰었지만
이제부터는 느림의 미학을 함께 즐겨야 할 것 같다. 프랑스식으로 생각의 코드를 전환하는 거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앞 사람이 온갖 느림을 다 부려도, 혹시 계산이 잘 못 되어서 마냥 기다리게 되어도
그러려니 하자. 집을 구해주는 부동산언니가 약속을 미루고 느릿느릿해도 그러려니...
언젠가는 내 마음에 맞는 집을 만나겠지 느긋하게 생각하자. 인터넷이 늦게 돼서 서울과 연락이 단절돼도
그러려니... 인터넷 세상을 못 만나도 그러려니... 언젠가는 만나겠지.
이대로 인터넷을 영영 못하는 건 아니니까 기다리자...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자.
너무 빨리빨리 인생을 살다보면 인생의 종착역으로 빨리 도착할 수 있단다.
느긋하게 주위 경치를 느끼고 감상하면서.. 카페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에 프랑스식 여유를 즐기면서...
느림의 미학을 찬양해 보자.
그러다보면 우리도 가진 자의 여유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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