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여행,베네룩스삼국을 가다5-스타하스부흐
부지런한 남편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를 깨운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집으로 바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서 독일 쪽으로
넘어가서 스트하스부흐에 들렸다가 가잖다. 스트하스부흐? 솔깃해진다.
계획에 없던 여정은 더 신나는 법이다.
즉흥적으로 여정을 바꾼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여행마지막 날까지 이렇게 강행군을 하다니...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 할 남편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룩셈부르크에서 엑스 우리 집까지 8백km를 달려가야 하는데, 스트하스부흐를 들렸다가 가면 거리가
1천2백km로 늘어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을 하고 한 번 더 가는 거리다.
남편은 이 정도 거리는 거뜬하게 운전할 수 있다며 큰소리를 뻥뻥 친다.
할 수 없지!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니까.
우리는 어느새 룩셈부르크를 떠나 독일로 접어든다.
아우토반을 달리다가 무작정 마을로 들어선다.
여행정보도 없고, 독일어도 모르는 우리는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냥, 독일 마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 아침, 마을길은 출근길의 직장인과 등굣길의 학생들이 간간히 보인다.
마을의 외곽으로 접어들자 인적도 드물어진다. 평화롭고 한가해 보이는 독일마을이다.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가는 길은 산 길이다. 프랑스 땅도 이곳은 독일과 비슷한 분위기다.
드디어 스트하스부흐에 도착했다.
독일과 불과 3km떨어진 국경도시 스트하스부흐. 1870년 보불전쟁때 독일군에게 함락돼
50여년간 독일의 지배를 받았었고 제1차대전 종전과 함께 프랑스가 되찾은 땅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다시 독일에 점령을 당했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
우리에겐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도시다.
지금은 알자스지방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EU의 평의회 회의장 설치와 함께
국제 정치의 심장부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트하스부흐에 도착하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이건 아닌데 하는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다.
아무런 여행정보도 없이 무턱대로 찾아간 도시는 상상이상으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얼른 쁘띠뜨 프랑스만 구경하겠다던 우리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게 됐다.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관광안내소가 어디있는지...쁘띠뜨 프랑스는 또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주차를 하고 우선 큰 길로 나갔다.
(나중에 쁘띠뜨 프랑스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에 우리가 주차를 한 곳이 바로
쁘띠드 프랑스 앞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바로 가면 될 길을 밖으로 나가서
거꾸로 돌았던 것이다. 새삼 여행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느낀 사건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떻게 하면 쁘띠뜨 프랑스를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친절한 프랑스언니가 길을 따라서 조금만 걷다가 길모퉁이만 돌아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정말 길모퉁이를 돌아가니 강으로 둘러싸인 작은 운하도시가 나타난다.
암스테르담보다 규모는 작지만 훨씬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우리는 첫눈에 쁘띠뜨 프랑스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쁘띠뜨 프랑스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일본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린다.
스트하스부흐는 이 만화영화의 배경도시란다.
또 이곳은 빠리 사는 내친구 미순이가 한때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산책을 하면서 둘러보는 작은 프랑스가 점점 더 좋아진다.
강가를 걷고 있는데 유람선이 우리 곁을 유유히 지나간다.
쁘띠뜨 프랑스를 휘감고 있는 강물은 그닥 깊어 보이지 않는데 어찌 저런 유람선이 다닐까...
신기하다. 물이 깨끗해서 그런가 유람선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그와 동시에 빨리빨리 이곳을 돌아보고 집으로 가야하는 우리 일정이 원망스러워진다.
쁘띠뜨 프랑스 속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후회가 밀려온다.
이곳은 그냥 지나칠 곳이 절대 아니다. 느긋하게 도시를 돌아보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거나
최소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도시를 즐겨야 할 곳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 에잉~ 괜히 왔다.
차라리 아껴두었다가 다음에 제대로 올 걸... 나의 투덜거림이 다시 시작된다.
하얀색 벽과 짙은 갈색의 목조가옥이 이어진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을 지날때 나의 투덜거림은 최고조에 달한다.
아름답고 작은 프랑스가 자꾸 내 발목을 잡아끄는 것 같다.
그래.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꼭 다시 오자.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본다.
그때였다. 유람선 한대가 가뿐하게 운하를 지나간다.
어? 저기는 조금 전에 우리가 건넜던 다리다.
설마 이렇게 작은 다리 아래로 유람선이 지나가리라고 상상도 못했었는데...
유람선이 지나가자 한쪽으로 물러났던 다리가 스스륵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개폐교였나보다. 우리처럼 관광객들도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움직이는 다리를 바라본다.
다리가 완전하게 제 자리로 돌아오고... 다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간다.
이 작고 아름다운 쁘띠뜨 프랑스에는 이렇게 아기자기한 재미가 넘쳐난다.
쁘띠뜨 프랑스를 산책하다가 강물도 별로 없고 좁은 운하를 만났다.
주위를 살펴보니 유람선이 오가는 운하같다. 아니, 어떻게 유람선이 이런 곳을 통과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고 재미있었다. 배가 들어오면 수문을 열어서 운하의 수위를 높여준다.
유람선은 높아지는 수위를 따라서 점점 높이 올라오고...
수위가 똑같아지면 얼른 문을 열어서 유람선이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
오호~ 유람선을 탄 사람들도 밖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는 우리들도 정말정말 재미있다.
에잉~ 다시 한번 유람선을 탈 시간이 없는 현실이 우울해진다.
이제, 스트하스부흐를 떠나 집으로 갈 시간이다.
시간이 아까운 우리는 미리 주문해 둔 큼직한 케밥샌드위치를 받아들고 스트하스부흐를 떠난다.
이제 집까지 엄청난 길을 달려가야한다. 힘들지만 즐거운 여행길이니 콧노래를 부르며 갈 생각이다.
4박5일,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번 여행 길에 우리는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베네룩스3국에 보너스로 독일 쾰른과 프랑스 스트하스부흐까지 여행했으니...5개국을 간 셈인가.
많은 곳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덤벙덤벙 구경을 한 곳도 많았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우리의 기억은 짧다. 그러나 가슴에 담아둔 추억은 길게 남는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마음 속 깊은 곳, 우리들의 보석상자 속에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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