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 때문에 학교 간다!?
예비소집 날, 며칠 전에 본 필기시험과 인터뷰를 종합한 결과가 나왔다.
일취월장이랄까... 니보(niveau)가 무려 2등급이나 상승한 반에 배정을 받게 되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괜히 으쓱한 기분도 들고 에이~ 프랑스어 별거 아니네~
하는 자만심도 들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자만심은 며칠 못가서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독일어에 능통한 서구권아이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우리 반 친구들의 80%가 서구권아이들이다)
그런데 왜 이들과 나는 같은 반이 되었을까? 나보다 듣기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아이들인데...
그 결과는 며칠이 또 지나서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국어와 비슷한 프랑스어에 익숙하지만 정확한 문법에는 약했다.
<마리아네 집 앞 광장. 사실은 성소뵈르성당과 엑스법과대학광장이지만...>
특히, 내가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는 부분은 듣기였다.
교수가 마구마구 떠드는 소리, 수시로 틀어주는 뉴스같은 듣기테스트에서 나는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그들은 다르다. 말이 비슷해서 그런 가, 듣는 부분에서는 정말 게임이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친구들에게 경쟁심을 느끼거나 질투심이 들지 않았다. 작년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변화다.
나도 그들 못지 않게 프랑스어를 잘하고 싶은 욕심에 내 자신을 채찍질했을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뻐만 보인다.
아마도 나이 많은 아줌마시선에서 착한 아이들을 바라보자니 내 마음이 저절로 누그러진 것 같다.
하여간, 공부 잘하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 반은 늘 화기애애, 분위기만점이다.
교수들도 분위기가 좋은 우리 반에 만족해했다.
<내 친구 쥴리와 제니. 가운데 남자는 제니의 쌍둥이오빠. 영국에서 잠시 놀러왔단다>
우리 반 친구들은 열일곱 살 난 막셀라(콜롬비아소녀)부터 50살 된 쥴리(미국처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그렇지만 20세 전후의 파릇파릇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니 오십을 바라보는 내가 그들과 경쟁하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다. 나이는 못 속이는지 3년째 프랑스어공부를 하는 쥴리는
나보다 더 불어를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서 그런가 우리 반 아이들이 마냥 사랑스럽게만
여겨진다. 수업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힘든 학교공부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친구 따라서 강남 가는 사람처럼 나는 우리 반 친구들을 만나러 학교를 가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파티가 열렸던 마리아네 집. 갤러리 2층으로 학교에서 1분거리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내 남자친구가 출장을 간대. 와하하하 난 며칠 동안 자유야! 자유~
그래서 우리 집에서 파티 할까하는데 어때? 오케이? 꼭 올 거지?”
우리는 환호성으로 화답을 했고, 이렇게 마리아 남친의 출장을 기념한 파티가 성대하게 열렸다.
각자 먹을 것과 마실 술을 가져와서 신나게 놀면 되는 자유분방파티였다.
<쥴리와 데니 그리고 파티주최자인 마리아>
마리아는 프랑스쁘띠따미와 함께 살고 있는 멕시코계 미국인이다.
다정하고 착한 성품의 그녀는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파견근무 중이던
프랑스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단다. 쁘띠따미가 다시 프랑스로 발령을 받자 그를 따라 이곳 엑스로
왔다는데...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조만간 미국으로 돌아가서 의학대학원에 진학할거란다.
<쥴리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본인 앨리도 흥겨운 몸짓을 보낸다>
내가 파티에 간다니까 남편이 걱정을 한다.
“어이~ 나이 많은 아줌마가 괜히 주책없이 젊은 아이들 노는데 끼는 거 아냐? 괜히 물 흐리지 마셔!”
나도 이 부분이 살짝 걱정이 됐지만... 제니와 쥴리가 파티에 꼭 같이 가자면서
몇 번이나 확인을 하는 통에 용기를 냈다. 아줌마답게 아이들을 위한 요리도 준비했다.
떡을 넣은 고추장불고기. 우리 반 아이들은 매콤한 불고기 맛에 홀딱 반했다며 아우성이다.
특히 혜원이(교환학생으로 온 우리 반 아이, 내 아들보다 어리지만 엄연한 클래스메이트다)가
자기를 위해 만든 음식 같다면서 감격해 한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쥴리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쌍둥이오빠를 데려온 제니의 어깨도 들썩인다.
와인 잔을 기울이던 아이들의 공통화제는 프랑스어공부. 문법을 가르치는 세 명의 교수들을 돌아가며
논평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프랑스어실력이 뛰어난 디마의 흉을 보기 시작한다.
말 잘하고, 듣기도 잘 하는 디마 때문에 손해가 많다며 투덜거린다.
왜 디마가 더 높은 반으로 안 가는지 모르겠다며 불만들이다. 푸하핫 웃음이 나온다.
외국아이들도 남 흉보는 건 똑같군. 나는 어린 친구들과 맞장구를 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말에 동감한다.
<대충대충 찍은 단체사진. 맨 앞줄 빨간옷이 우리 반 막내 막셀라>
시간이 흐른다. 파티장은 시끌시끌 자유분방하다.
한 쪽에서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한쪽에서는 와인에 데킬라를 마시며 가끔 카약카약 소리도 지르며
수다꽃이 만발한다. 연배가 비슷한 쥴리와 나는 우리 세대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비록 태어난 나라와 자라난 환경은 다르지만 문화적인 공통점이 있기에 우리의 대화도
재미나게 이어진다. 존 덴버의 노래도 함께 흥얼거려본다. 파티는 아직도 한창이다.
어느새 10시가 다 되어간다. 앗! 난 유학생아줌마지? 황금 같은 금요일 밤,
친구 찾아서 놀러나간 부인을 기다리며 홀로 있을 남편이 떠오른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그날 아이들은 새벽 1시까지 신나게 놀았단다. 이렇게 잘 놀아야지 불어실력도 늘겠지?>
'살아가기 > 나, 유학생 맞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쉬운 이별의 시간 (0) | 2010.06.30 |
---|---|
다시 유학생이 되다. (0) | 2009.10.31 |
안녕! 나의 학창시절이여... (0) | 2009.07.22 |
올가의 초대 (0) | 2009.07.20 |
봄은 왔는데 아이들은 아프다 (0) | 2009.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