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의 북쪽 입구... 오항주 (2008년 6월)
오항주(Orange)는 프로방스의 북쪽입구의 마을이다.
인구가 3만 명도 안 되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지만 한때 로마제국의 문화가 번성했던 곳이다.
2천년 역사의 고도 오항주는 세계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로마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큰 도시보다 작은 마을을 더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는 딱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오항주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북쪽에 있는 개선문(ARC DE TRIOMPHE).
키이사르가 프로방스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문이다.
문이 서 있는 길은 아를과 리옹을 잇는 길이란다. 2천 살이 넘은 개선문은 세월의 흔적만큼
지워지고 파괴되어 있으나 오래된 친구처럼 푸근하게 느껴진다.
다른 도시들처럼 개선문주변이 도로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다.
개선문 북쪽의 조각은 그래도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카이사르의 공적을 기리는 전투장면이 많이 새겨져있다.
개선문은 차라리 오항주가 작은 도시로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빠리나 막세이, 툴르즈에서 만난 개선문들처럼 차량의 홍수 속에서 매연의 공격을 받으며
힘든 삶을 살지 않아도 될테니까.
개선문 주위를 빙 둘러서 자그마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잘 가꾸어진 잔디는 없지만 군데군데 자라난 들풀과 보드라운 흙이 푸근한 공간이다.
지친 관광객의 발걸음을 충분히 감싸주고,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는 오항주사람들에게
옛날의 광영을 은근하게 전해주는 공간이다.
2천년 전의 명성은 고대극장에서도 빛난다.
남쪽의 생 뛰토뻬(Colline St-Eutrope)언덕기슭에 있는 고대극장은 무대 돌벽이
2천년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거석을 쌓아올린 벽면은 길이가 103m 높이가 36m.
중앙 아케이드 위에 세워져있는 조각상은 황제 아우구스트스의 당당한 모습이다.
언덕까지 이어진 객석이 장관이다. 1869년부터 전 세계 일류연주자들이 모여들어서
매년 6월부터 8월 사이에 음악축제(CHOREGIES D'ORANGE)가 열리고 있다.
2천년 전의 고대극장에 앉아 한여름 밤의 음악축제를 상상해 본다.
그러나 현실은 햇살이 뜨거운 한 낮. 발길을 돌려 생뛰토뻬 언덕을 오른다.
군데군데 고대극장을 훔쳐 볼 수 있는 뷰 포인트가 보인다.
고대극장에 앉아서 2천년의 세월을 감상하지 않을 거라면...
한여름 밤의 음악회를 감상하지 않을 거라면 비싼 입장료대신
발품을 팔아서 이 언덕을 오를 것을 권하고 싶다.
비록 철조망 밖이지만 고대극장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고...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고대극장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덕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시전경은 환상이다.
다른 프로방스의 마을들처럼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주황색 기와지붕이 어여쁘다.
프로방스 풍의 파스텔톤 덧문도 아름답다. 언덕에 서니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미스트할이 분다.
혼 강가의 거센 미스트할과 달리 부드러우면서 자상한 바람이다.
오항주 시내를 걷다가 8백년 된 성당과 마주쳤다.
1208년에 세워져 올해로 꼭 8백년 된 성당.
도시의 규모에 걸맞게 적당한 크기의 성당은 분위기도 소박하다.
그런데 스테인드글라스가 범상치 않다. 천주교에 문외한이지만 분위기가 좋다.
그동안 이름난 관광지를 돌면서 만난 유명한 성당이 주던 압도적인 느낌이 없어서 더 좋다.
8백 살 된 기념행사가 있는 것 같다. 낡은 성당을 꽃단장할 계획도 있어 보인다.
성당은 아주 작은 부분을 표시나지 않게 단장하는 것 같다.
갑자기 요란한 신축불사를 서두르는 우리나라 절들이 떠오른다.
문득, 2천 년의 전통을 간직한 도시 오항주에서...떠오른 짧은 생각 하나!
내가 사랑하는 우리나라 절들이... 예전의 전통을 그냥 간직한 상태로
불심이 우러나는 공간으로 소박한 리모델링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것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의 이기적인 감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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