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트 마리 드 라 메흐와 까마흐그(Les Saintes Maries de la mer et Camargue)
멀고 먼 옛날, 한적한 남프랑스의 바닷가에 조그마한 배 한척이 흘러들어왔다.
배 안에는 성모의 동생인 마리아와 야곱과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타고 있었다. 예수가 죽은 후, 유대인들에게 추방을 당한
이들은 거칠고 긴긴 항해 끝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세 명의 마리아를 환대하며 맞아들였고, 마을 이름도
바다의 성 마리아라는 뜻으로 ‘쌩트 마리 드 라 메흐’로 불렀다.
마을에 도착한 막달라 마리아는 곧 바로 쌩트 보메(참고/블로그에 소개해 놓은 마을)
깊은 산중으로 떠나 그곳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살았고, 나머지 마리아들은 시녀 사라와
함께 이 마을에 정착해 남은 생을 보냈다.
이들의 묘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이 마을은 순례지가 되었다.
쌩트 마리 드 라 메흐에서는 매년 순례자의 축제가 열린다.
축제일은 5월 24,25일과 10월 22일에 가장 가까운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흑인 사라의 인형을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돈 다음 바다로 가서 성수를 뿌리는 것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우리가 쌩트 마리 드 라 메흐를 찾아간 날은 8월 중순. 순례자의 축제는 없었지만 마을은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작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지나 마을 한가운데 있는
교회로 갔다. 10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지어진 이 교회의 지하예배실에는 두 명의 마리아와
시녀 사라에게 봉헌된 3개의 십자가가 있다.
교회를 나온 우리는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교회지붕으로 올라간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요금은 2유로. 교회 지붕이 별로 높지 않아서 그런 가
무릎이 부실한 나도 올라가는데 별로 부담이 없다.
대신 일방통행인 나선형계단은 폐쇄공포증이 느껴질 정도로 답답하다.
교회지붕에 도착한 순간, 에메랄드빛 지중해와 빛바랜 주황빛 지붕을 이고 선 프로방스 집들이
와르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방스 풍경과 마주한 내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한다. 미끄러운 지붕을 타고 조심조심 꼭대기에 올라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제부터 내 눈이 아닌 가슴이 풍경을 바라보고 느낄 시간이다.
8월의 뜨거운 태양도 두렵지 않다. 이대로 시간이 영영 멈추어도 좋다....
“안 내려가? 여기서 살림을 차릴 생각이셔?”
드디어 기다리다 지친 남편이 나를 재촉한다. 그는 나와 경치를 바라보는 방법이 다르다.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 해야 하고,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처럼
경치구경도 후다닥이다. 그는 지붕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사진을 찍고,
지붕주위를 몇 바퀴 돌며 건축형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미 모든 지붕투어를 끝낸 상태다.
마음 같아서는 더 머물고 싶지만 남편을 따라서 지붕을 내려온다.
마을길도 돌아보고, 까마흐그 습지를 둘러보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한 좁은 마을길은 걷기가 힘들 정도다.
마을의 집들은 전통적인 프로방스풍이라기보다 그리스풍에 가깝다.
아주 먼 옛날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던 흔적이 남아서 그런 것 같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기념품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프로방스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더불어 까마흐그의 소금과 쌀을 파는 가게들이 제일 많이 보인다.
관광지에서 파는 물건은 비싸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 마을에서 파는 까마흐그 소금과 쌀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 까르푸에서 1.2유로면 살 수 있는 똑같은 까마흐그 소금이 이곳에서는
3유로나 한다. 여행지 바가지상혼은 세계적인 추세인가보다.
마을 산책을 마친 우리는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닷가 모래 해변에는 알록달록 멋진 비키니를 입은 바캉스족들이 가득하다.
쌩트 마리 드 라 메흐 해변은 유난히 곱고 가는 백사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른 지중해변과 마찬가지로 입장료를 받거나 자릿세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전혀 없다.
해변 군데군데에는 간단한 샤워시설도 있어서 무료로 샤워를 즐길 수 있다.
당장, 수영복을 갈아입고 와서 지중해바다로 풍덩~뛰어들까 망설이다가
까마흐그 습지로 발길을 돌린다.
까마흐그는 아를과 지중해 사이에 있는 광활한 습지다.
자연의 성역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과학자와 생태조사를 하러오는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다.
이곳에는 까마흐그 특산인 백마와 검은 소(투우용 소) 그리고 홍학을 비롯한 온갖 야생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자연보호지역인 만큼 자동차통행은 금지되어있다. 관광객은 하이킹코스를 통해
바깥에서 구경만 할 수 있다. 까마흐그를 구경하는 방법은 네 가지.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말을 타거나 사파리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접근한 다음 걸어서 까마흐그를 둘러보기로 한다.
<까마흐그의 백마, 슈발 블랑. 습지 외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백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거의가 승마클럽 소속으로 말을 타고 까마흐그를
둘러보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수단 같다. >
광활한 까마흐그 습지를 둘러보는 일은 체력전이다.
자전거는 사막을 달리는 것만큼 힘들고, 말을 타는 일은 재미있지만 초보자에게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걷기는? 글쎄...하이킹 코스 가운데 하나만 선택한다고 해도 꼬박 한 나절은 걸어야 한다.
까마흐그가 시작되는 마을, 쌩트 마리 드 라 메흐에는 습지를 관광할 수 있는 꼬마 열차, 쁘띠 트항과
배를 타고 습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까마흐그를 돌아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다.
<까마흐그는 유럽의 유일한 야생 홍학 서식지다.>
한 여름에 까마흐그 습지를 걸어서 다닌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
우리 체력으로는 말도 안 된다. 그래서 슬쩍 편법을 선택했는데 나름 괜찮았다.
우연히, 자동차통행이 금지된 곳에 위치한 캠핑장을 통과하면 까마흐그 하이킹코스와
연결된 해변도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서 차를 몰았다.
우리처럼 해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종종 보인다. 중간에 주차를 하고,
잠시 하이킹코스를 걷는다. 그러다가 다리가 아프면 또 차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이렇게 한 시간쯤 까마흐그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우리의 까마흐그 여행을 사파리투어라고 이름 짓는다.
마침, 습지대를 통과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쌩트 마리 드 라 메흐와 까마흐그로 가는 방법
1>아를(Arles) 국철역 앞 시외버스터미널(갸흐 후티에)에서 출발하는 쌩트 마리 드 라 메흐
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첫차는 7시 50분에 있고 10시 5분, 12시 15분, 16시...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막차는 18시35분.
주의/ 버스시간은 계절과 요일에 따라서 달라진다.
가능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요금은 일반 3유로. 65세 이상과 학생은 1유로.
2>몽플리에(Montpellier)를 출발하는 쌩트 마리 드 라 메흐행 버스는 하루 2번,
오전 9시30분과 13시30분에 있다. 쌩트 마리 드 라 메흐를 출발하는 몽플리에행 버스는
14시40분과 17시 35분에 있다.
3>쌩트 마리 드 라 메흐--->까마흐그
-자전거와 말 그리고 사파리를 이용해서 까마흐그를 돌아보는 방법이 있다.
-꼬마기차나 유람선을 타고 까마흐그를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4>봄과 가을 순례자의 축제(5월 24,25일과 10월22일에 가까운 주말)가 열리는
것 외에도 해변에 있는 투우장에서 투우경기가 가끔 열린다. 여름에는 투우축제를 열기도 한다.
5>쌩트 마리 드 라 메흐는 바다와 습지 그리고 프로방스의 마을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만약, 여름에 프로방스를 여행한다면 이곳에 하루 이틀 머물면서 지중해바다를 즐기고
까마흐그 습지를 탐험해보는 것도 좋다. 음식값도 다른 도시보다 비싸지 않다.
쌩트 마리 드 라 메흐 관광안내소
www.saintesmariesdelam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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