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보낸 일주일6
안탈랴의 아침이 밝았다. 커튼을 열자, 에메랄드빛 지중해가 부드러운 햇살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
지난번보다 더 전망이 좋은 방을 배정받은 우리는 행복에 겨워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전망 좋은
방에서 지중해를 즐길 수 있다니, 완전 감동이다. 우리는 가슴을 활짝 열고 지중해를 품는다.
전망 좋은 방에 감동받은 나는 싱글벙글 모든 것이 즐겁다. 오늘 안탈랴를 돌아보는 여행 일정이
부실해도 오케이다. 이런 나와 달리 남편은 여행프로그램에 불만이 많다. 오전에 폭포 하나 구경하고
주얼리회사에 들려야하는 것도 싫고, 오후에는 잠깐 시내구경을 하고 가죽회사로 쇼핑관광을
가야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투덜이다.
바다로 흘러드는 폭포는 안탈랴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란다. 우리나라 정방폭포보다 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후다닥 폭포주변을 둘러보고 가이드는 우리를 주얼리회사로 안내한다.
다행히 쇼핑스트레스는 주지 않는다. 회사에서 제공한 와인을 마시며 반짝반짝 화려하고, 비싸고,
예쁜 보석들을 구경한다. 견물생심이라고 매장을 돌며 보석구경을 하다보니 보석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도 슬슬 욕심이 생긴다. 꼭 갖고 싶다면 사주겠다는 남편의 아부성 발언이 없었다면...
지름신이 강림하는 대형사고를 쳤을 지도 모르겠다.
바닷가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은 환상적이다. 터키전통요리는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매콤한 시시케밥과 부드러운 감자퓨레의 궁합도 잘 어울린다. 식도락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에게도
터키음식은 만족스러운가 보다. 안탈랴의 따뜻한 햇살이 야외테라스로 쏟아진다.
프로방스의 햇살보다 강렬한 느낌이다. 갑자기 프로방스는 잘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안탈랴 시내구경은 제일 기대했던 시간이다. 가이드와 함께 구시가지에 있는 모스크로 들어간다.
터키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나라지만 전 국민의 99%가 이슬람신도다. 현 정권이 들어서고
이슬람의 입김은 더 세졌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가이드의 종교가 궁금해졌다.
역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우리 가이드 무스타파는 이슬람신자가 아니란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는 항구는 지중해의 햇살이 가득하다. 부두에 정박한 요트를 바라보랴,
투명하게 맑은 바닷물에 감탄하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까말까 망설이랴, 자꾸만 내 걸음이
느려진다. 이런 나와 달리 남편의 걸음은 자꾸 빨라진다. 가이드가 허락해준 한 시간 15분 동안
빨리빨리 시내를 돌아봐야한다며 서두른다.
<길을 잃고 헤매도 행복할 것 같았던 아름다운 골목길들>
<터키의 전통생활양식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칼레이치 박물관.>
제대로 된 지도도 없이 헤매는 골목길은 미로다. 아름다운 골목길이라면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나와 달리 남편은 빨리 하드리아누스문을 찾아야한다며 나를 잡아끈다. AD130년 하드리아누스황제가
안탈랴 지방을 방문한 후 세웠다는 아치형문을 꼭 봐야한단다. 그런데 한국어가이드책에 나온 지도를
따라 아무리가도 못 찾겠다. 결국 물어물어 찾기는 했는데 하드리아누스문은 지도와 다른 곳에 있었다.
윽! 엉터리지도라면 차라리 싣지를 말지...
<안탈랴의 트램. 안탈랴 시내에서 9개 정거장을 25분 동안 운행하는 깜찍한 교통수단이다.>
시내구경을 하기에 1시간 15분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골목길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이리저리 헤매다가 만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아무래도 내일 옵션을 따라가지 말고 그냥 우리끼리 시내구경을 나와야 할 것 같다.
이런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가이드가 시내관광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쉽냐고 물어본다.
이구동성 그렇다며 웅성거리자 재빨리 해결책을 강구해준다. 자기가 생각해도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면서 여행사홈페이지에 항의의 글을 남기란다. 대단한 가이드다. 고도의 심리술인지 아니면
진정한 여행자편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는 아쉬워하는 우리들을 이끌고 가죽회사로 들어선다.
쇼핑고문이 시작됐다. 물론 직접적인 스트레스는 없다. 그런데 이 회사의 판매원들은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옷을 권한다. 아무리 최고품 제품이라지만 보통 코트 한 벌에 천유로가 넘는다. 어떤 건 만유로도 넘는다.
허걱! 가죽소파보다 더 비싸다. 가죽코트가 세 벌이나 있는 나는 코트를 살 의사가 전혀 없다.
슬슬 눈치를 보다가 판매원을 따돌리고 매장을 나선다. 그는 우리 뒤통수에 대고 지하매장으로 내려가면
작년제품을 아주 싸게 살 수 있다며 아쉬워한다.
회사 마당에는 우리처럼 쇼핑을 피해서 도망 나온 사람들이 여럿이다. 쇼핑고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 그런지 우리는 허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수다는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
남편은 영어를 하는 프랑스아저씨들과 나는 프랑스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드디어, 가이드와 함께 쇼핑을 마친 사람들이 나타났다. 쇼핑백을 잔뜩 들은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우와! 비싼 가죽코트를 저렇게 많이 사다니... 돈이 엄청 많은 가 보다. 나는 괜히 기가 죽어서 투덜거린다.
리옹에서 온 마담이 산 가죽코트 가격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 정말 나는 살짝 기가 죽어있었다. ㅎㅎㅎ
'길을 떠나다 > 터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에서 보낸 일주일7 (0) | 2011.03.18 |
---|---|
터키에서 보낸 일주일5 (0) | 2011.03.10 |
터키에서 보낸 일주일4 (0) | 2011.03.10 |
터키에서 보낸 일주일3 (0) | 2011.03.04 |
터키에서 보낸 일주일2 (0) | 201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