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보낸 일주일7
빗소리에 잠을 깬 시간은 새벽 2시. 천둥번개를 동반한 겨울비의 기세가 등등하다.
드디어 여행마지막 날, 제대로 비를 만나게 되나보다. 갑자기 일인당 35유로나 되는
옵션여행을 선택한 것이 후회된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구경을 다닐 일도 갑갑하다.
어제, 옵션여행을 취소했어야 했는데...에잇! 그냥 느긋하게 호텔에서 쉬다가 우리끼리
시내구경이나 갈 걸... 까무룩 다시 잠이 들 때까지 내 머릿속은 이렇게 복잡복잡했다.
오늘은 공식적인 여행 일정이 없는 날이다. 쉬고 싶은 사람은 호텔에서 쉬어도 되고,
가이드와 함께 여행을 더 하고 싶으면 옵션을 선택해야한다. 우리는 안탈랴 외곽에 있는
쿠룬슐르 공원과 아스펜도스를 돌아보고 점심을 함께 먹는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오후 2시면 일정이 모두 끝난다니, 오후에 안탈랴시내를 다시 돌아볼 시간도 있을 것 같다.
다행히 비도 그쳤다. 꾸물꾸물한 하늘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우리의 '날씨 복'에 감사를 보낸다.
우리 일행 23명 중 12명이 옵션을 선택했다. 큰 버스 대신 미니버스를 탄 우리는 더 오붓한 느낌이다.
갑자기 뒷자리에 앉은 주할머니가 오늘 일정을 묻는다. 모두들 모른단다. 뭐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옵션을 선택한 거야? 내 옆에 앉은 크리스토프가 조수석에 앉은 가이드에게 물어보겠다며 나선다.
할 수 없이 내가 오늘 일정을 설명해주었다. 쿠룬슐르 공원에서 폭포구경을 하고 아스펜도스에서 원형극장을
볼 거라니까 모두들 환호하며 좋아한다. 즉석에서 나를 자신들의 가이드로 임명한다며 깔깔거린다.
쿠룬슐르는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공원이다. 우리는 폭포주변을 산책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침 일찍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 산뜻하다. 그러고 보니, 비수기라 그런 가 공원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아서 조금 썰렁한 느낌이다. 공원산책을 마치고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스펜도스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친다. 햇살도 막강하다. 원형극장 계단에 앉아서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는데 송골송골 땀도 맺힌다. 고대로마시대 유물인 이 극장은 보존상태가 완벽해서
지금까지도 연주회가 열리고 있단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는 국제오페라와 발레페스티벌이 열린다는데
그 감동의 현장을 보고자 전 세계에서 여행객들이 몰려든단다.
우리는 원형극장을 천천히 돌아본다. 장난스럽게 아! 아! 소리를 내자 살짝 울리는 느낌도 난다.
가파른 계단은 세월의 무게 탓인지 미끌미끌하다. 간간히 무너져 내린 곳도 보인다.
건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아스펜도스의 경치는 온통 오렌지 밭이다. 극장을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프면 잠시 계단에 앉아 따뜻한 햇살아래 해바라기를 즐긴다. 가이드의 재촉만 없었다면
몇 시간이고 이렇게 앉아 극장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
<주차장에서 바라 본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안에서 보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
마실때도 양복차림들이 많다. 우리 6.70년대 아저씨들처럼... ㅎㅎㅎ>
<끝없이 이어지는 오렌지나무들. 안탈랴 일대는 유명한 오렌지생산지란다. 터키오렌지는 참 달고 맛나다.>
원형극장을 떠나 도착한 곳은 고대 로마시대유적이 있는 작은 마을.
이 마을에도 오렌지나무가 지천이다. 한 봉지 가득 담긴 오렌지가 1유로란다.
우리는 얼른 오렌지를 사서 사람들과 나누어먹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환상이다.
점심을 먹은 식당은 터키전통식당이라는데 별로 전통 깊은 곳 같지 않다. 우리는 이곳에서 석류식초를 넣은
샐러드와 튀김요리를 전채요리로 먹었다. 내 옆에 앉은 주할머니가 맛있게 터키요리를 먹으며 자신의 짧은
요리경력을 소개한다. 젊은 시절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요리를 할 시간이 없었고, 은퇴를 한 다음에야
요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요리가 너무너무 재미있단다. 그럼, 요리를 하기 전에는 뭘 드셨냐고 물었더니
주로 냉동식품을 사다가 먹었단다. 헉! 아무리 프랑스 냉동식품이 잘 되어있다지만 너무했다 싶은데...
마주앉은 그녀의 남편이 한술 더 뜬다. 어떻게 주부들이 직장일과 집안일을 다 잘 할 수 있겠냐며,
냉동식품에 의존하는 건 당연한 일이란다. 와~ 프랑스남편들 만세다!
메인요리를 주문하는 시간. 모두들 시시케밥을 선택했는데 나만 생선요리를 주문했다.
그런데 케밥요리가 나오고, 식사가 거의 끝나도록 내가 주문한 생선요리가 안 나온다.
혼자 멀뚱멀뚱 앉아있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아마도 주방장이 주문을 받자마자 근처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간 것 같다면서
음식이 늦게 나와도 기다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ㅎㅎㅎ.
점심식사가 끝나자 가이드가 다가와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 늦어질 거라며 양해를 구한다.
이유는 우리 여권 때문. 카파도키아에서 우리 여권을 갖고 출발한 가이드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장소가 좀 멀리 있단다. 순간,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못 들겠다. 무안해하는 나를 위로하려는지
모두들 괜찮다며 하하하 웃는다. 자신들이 필요하다면 항상 우리부부와 함께 하겠단다.
정말 고맙고 좋은 사람들이다. 이번 여행은 ‘날씨 복’뿐만 아니라 ‘인복’도 두둑하게 받았나보다.
여권을 찾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주할머니를 주축으로 한 일행들이 안탈랴 시내관광을 제안한다.
즉석에서 약간의 차비만 더 내면 안탈랴 시내까지 데려다주겠다는 협상이 이루어진다. 어차피 호텔에
들렀다가 시내로 나오려고 했는데 잘 됐다. 여럿이서 움직이니 택시비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다시 찾은 안탈랴 시내는 감동의 물결이다. 우리는 느긋하게 구시가지를 돌며 산책을 즐긴다.
어제처럼 찬란한 태양은 느낄 수 없지만 대신 차분한 마음으로 시내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골목길 구석구석을 누비는 발걸음이 흥겹다.
아기자기한 기념품가게에서 쇼핑을 하고, 터키의 명물이라는 깨빵으로 군것질을 하며 안탈랴의 항구로
접어든다. 천천히 옛 항구의 정취를 느끼며 걷는데 누군가 우리를 반갑게 부른다. 옵션을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일행들이다. 호텔에서 느긋하게 오전시간을 보내고 시내구경을 나왔단다는 그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우리를 반긴다. 옵션여행을 하면서 비는 안 맞았느냐는 걱정도 해준다. 안탈랴에는 오전 내내
비가 왔다나? 푸하하 나는 우리의 막강한 날씨 복을 자랑삼아서 설명해주었다.
우리의 발걸음은 이블리 미나렛으로 향한다. 어제 시간이 없어서 못가 본 곳이다.
안탈랴에서 가장 오래된 셀주크 왕조의 유적으로 높이가 38미터나 되는 기둥이다.
두 시간 넘게 안탈랴 시내를 돌아다니고 나니 어제부터 시작된 갈증이 해소된 느낌이다.
이렇게 터키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시내 높은 곳에
서서 지중해와 어우러진 안탈랴 풍경을 가슴에 차곡차곡 담는다. 아듀~안탈라여...
추신/ 다음날 우리는 새벽 두시에 안탈랴 호텔을 나와 다섯 시 비행기를 탔다.
출발 전에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는데, 리옹에서 온 마담이 짜잔 고급스럽고 멋진
가죽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어제 가죽회사에서 샀다는 이 코트 가격은 150유로.
뭐시라, 23만원? 아, 아니... 이렇게 좋은 코트가?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쩌냐? 가죽코트 사러 다시 터키여행을 올 수도 없고...
남편이 안타깝다는 눈으로 놀리듯이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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