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트 빅투아르 산자락에는 보브나흐그가 있다.
나는 작고 예쁜 마을을 좋아한다.
빠리나 리옹, 막세이 같은 대도시를 여행하거나 깐느나 니스같은 휴양도시를
돌아다닐 때보다 작고 예쁜 마을은 내 가슴을 더 뛰게 한다.
다행히 프랑스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고 예쁜 마을들이 참 많다.
욕심 같아서는 프랑스에 사는 동안, 예쁜 마을들을 다 돌아다니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냥 내가 사는 프로방스를 중심으로 마을들을 탐방하려고 한다.
피카소의 샤또가 있는 마을, 보브나흐그(Vauvenargues).
보브나흐그는 생트 빅투아르 산자락에 소롯이 안겨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엑상프로방스에서도 멀지 않은 산골마을 보브나흐그는 또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가 말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먼저, 보브나흐그를 감싸고 있는 산 생트 빅투아르(Sainte, victoire)를 소개하면...
생트 빅투아르는 엑스에서 나고 자란 화가 세잔이 매일 화구를 메고 산을 올라 그림을
그렸던 산이다. 그는 생트 빅투아르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에 담았고, 그와 더불어
생트 빅투아르도 유명해졌다. 세잔을 비롯한 피카소, 졸라 등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 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그들의 예술을 한층 승화시켰다는데...
만약, 이 산을 직접 만나게 되면 누구라도 이 말에 공감할 것 같다.
나 역시, 처음 생트 빅투아르를 만났을 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떨렸었다.
<보브나흐그 마을 입구>
내가 처음 보브나흐그를 찾은 건, 2007년 가을.
남편과 생트 빅투아르 남쪽 길로 드라이브를 하다가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마을로 들어갔었다.
산 속에 오롯이 안겨있는 마을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이 새롭다.
돌로 지은 집들은 다소 낡았으나 깨끗했고 아름다웠었다. 그러나 당시, 생트 빅투아르의 매력에 빠져있던
우리는 갈 길이 바빴었다. 작은 마을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꼭 다음에 다시 와서 제대로 마을을 돌아다녀야지..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었다.
<마을을 들어서자 만난 프로방스식 돌집들. 파스텔톤 덧문이 아름답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9년 6월. 다시 보브나흐그를 찾았다.
그 사이, 나는 이 마을이 피카소가 한때 살았던 곳이고 ‘와! 저 멋진 샤또는 뭘까? 누가 주인일까?’하고
궁금해 했던 보브나흐그의 샤또가 피카소가 살았던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09년, 엑스는 피카소의 해를 선포한 것 같다. 뮤제 그라네에서는 피카소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더불어 피카소의 샤또 보브나흐그도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고 있다.
아주 예외적인 행사란다. 피카소에 필이 꽂힌 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피카소전시회를 다녀왔고, 이제 피카소가 노년을 보냈다던 샤또 보브나흐그를
만나러 아름다운 마을 보브나흐그를 찾아간다.
<샤또 보브나흐그. 피카소는 이 샤또를 사랑하는 아내 재클린을 위해서 샀다. >
6월의 보브나흐그는 프로방스의 햇살로 잔뜩 달궈져있다.
샤또 보브나흐그를 개방하는 행사 때문인가, 마을은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마을 입구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생트 빅투아르가 떡하니 버티고 섰다.
프로방스식 돌집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덧문과 무성하게 자란 담쟁이덩굴로
마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집들은 다소 낡았지만 참 정갈하다.
보브나흐그 마을은 내가 좋아하는 작고 예쁜 마을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덤으로 피카소의 후광까지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을의 작은 카페. 카페 뒤로 샤또와 생트 빅투아르가 보인다>
옥의 티라면, 샤또 보브나흐그의 사진을 절대로 찍지 못하게 하는 것.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의 정취를 느끼는 것이 내가 마을을 탐방하는 이유지만,
막상 사진을 찍는 자유를 박탈당하자 살짝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다.
샤또 입구에서부터 사진촬영은 절대금지다. 샤또 내부는 기본이고 주변 경치도 절대로 안 된단다.
나중에 카메라를 체크하겠다는 엄포까지 놓는다. 게다가 피카소의 작품은 물론이고 샤또 안에 있는
가구도 절대로 만지면 안된단다. 흥! 치사한 것들.
그러나 어쩌랴, 평소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샤또라는데, 그나마 특별하게 공개를 하는 것이라니
그냥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수밖에.
<샤또로 들어가는 입구.>
<마을의 작은 전시회.>
샤또 보브나흐그는 또 다른 발견이었다.
거장 피카소의 조형물과 그가 제작한 도자기를 직접 만날 수 있었고, 그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방에서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서 성안을 돌며 속으로 투덜투덜 거렸다.
이 좋은 걸 그냥 보기만하라니..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내 기억은 금방 날아가 버릴 텐데..
아까워서 어쩌나...
<샤또 보브나흐그 입장권. 일 인당 6.2유로다>
샤또 보브나흐그의 현재 소유주는 피카소의 마지막 아내 재클린의 딸이다.
노년의 피카소는 마흔 살이나 어린 그러나 애까지 딸린 이혼녀 재클린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피카소는 이 샤또를 샀다.
한때 프로방스 지방을 지배했던 왕의 소유였던 이 샤또는 1958년에 피카소의 소유가 되었고,
얼마 후 그는 아내에게 이 샤또의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재클린이 죽자 이 샤또는 그녀의 딸에게 상속됐다.
<팜플렛에 실린 샤또 내부 사진. 사진을 못 찍게하니. 요거라도 찍자!
피가소가 그림을 그렸던 작업실이며 그의 작품들이 보인다>
“내가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를 샀어.”
1958년 9월. 샤또 보브나흐그를 구입한 피카소가 친구에게 한 말이란다.
정말 그랬다. 샤또는 생트 빅뚜아르의 품에 꼭 안겨있다. 그는 정말 성과 함께 생트 빅투아르까지 산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세잔처럼 산을 그리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샤또에 있는 작업실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팜플렛에 실린 이 사진은 피카소가 식사를 했던 방이다. 그의 작품들과 함께 그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뷔페(장식찬장)이 그대로 남아았다. >
피카소의 샤또 보브나흐그 때문에 보브나흐그 마을은 지금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그러나 다시 샤또의 문이 꽁꽁 닫히면 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이런저런 행사에 상관도 없고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늘 생트 빅투아르의 품안에서 평화롭게 살 고 있으니까.
보브나흐그 마을로 가는 길
엑상프로방스 오피스 투우리즘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보브나흐그행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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