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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다/프랑스 구석구석

빠리 2008

 

빠리에서의 작별 여행 (2008년 1월 7일~10일)

프랑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들과의 재회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짧다면 짧고 길었다면 길었을 시간 24일. 그동안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을 아들과 함께 하면서

아들을 우리 가슴속에 가득 담아두었다.


아들이 엑스에 도착한 날...녀석이 챙겨온 여행가방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아빠한테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오느라 제 옷도 몇 벌 가져오지 못한 초라한 여행가방.

그 안에 속옷과 양말을 손수 챙겨 넣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메어왔다.

어미가 돼서 자식의 여행가방을 챙겨주지도 못 했구나 하는 안타까움도 일었다.

그와 동시에 벌써부터 아들과의 헤어짐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기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싫은데 어쩌나...

울면서 헤어지면 헤어져있는 동안 내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하는 동안 마음을 단련시키기로 했다.

 

 

              

 

 

 아들과 함께 빠리를 여행하면서 나는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단련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서울로 돌아갈 때는 빠리 샤를 드골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빠리여행을 함께 하지 못한 남편은 아들과 먼저 헤어져야 하는 것이 내심 가슴이 아픈 눈치다.

그 마음을 감추느라 괜히, 내가 아들을 보내면서 공항에서 펑펑 울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들과 4일이나 더 함께 할 수 있는 내가 부러운가 보다.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그 동안 아들이 참 많이 컸고 어른스러워졌다.

지난여름, 배낭여행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여행을 하는 폼이 전문가 수준이다.

편안하게 남편이 운전하는 차만 타고 다녔던 나와는 달리 아는 것도 많고 재빠르다.

혼자서 빠리에서 묶을 호텔을 예약하고, 3박4일 동안 다닐 곳과 쇼핑할 곳을 짜고,

어리버리한 엄마를 에스코트해서 다니느라 참 고생이 많았다.

 

 

 

  

아들 덕분에 악명 높다는 파리의 지하철역을 능숙하게 재미있게 돌아다녔고,

아들 덕분에 바토 무슈를 타고 멋진 경치를 하나라도 더 감상할 수 있었고,

아들 덕분에 에펠탑에 올라 파리의 야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 여행일정은 3박4일. 아들은 지난여름 배낭여행을 할 때, 이미 빠리를 다녀갔었으니

두 번째 여행인 셈이다. 아들은 지난번에 못 가본 곳, 못 해 본 것을 중심으로 여행일정을 잡았다.

첫날일정은 샹제리제거리를 걸어보고, 에펠탑을 올라보고, 무슈바또를 타고 세느강을 유람하는 것!

 

 

 

 

 

 

빠리에 사는 내 친구 미순이는 테제베가 도착하는 리옹역으로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고 맛난 점심까지 사준다.

졸지에 현지인 가이드를 동반한 우리의 빠리여행은 첫날부터 순조로웠다. 한 겨울인데 날씨도 좋다.

바또 무슈를 타며 야경을 즐길 때도 에펠탑에 올라서 빠리의 야경을 감상할 때도 전혀 추운 줄 몰랐다.

 

 

 

 

                <빠리사는 내 친구 미순이. 프랑스생활 20년이 넘었으니 거의 현지인수준이다.> 

 

 

 

                                        <유람선에서 바라 본 에펠탑 >

 

 

 

<샹제리제 거리의 야경>

 

 

아들과 나는 ‘함께 유럽여행을 하겠다’는 꿈을 드디어 이루었다는 기쁨에 젖어서 마냥 행복했다.

에펠탑에 올라서 들뜬 마음으로 남편에게 위로와 안부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빠리여행을 함께 하지 못해서 그런가 남편 목소리가 시무룩하다.

우리는 에펠탑의 야경에 푹 빠져서 마냥 빠리의 밤을 바라보았다. 겨울바람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에펠탑에서 바라 본 빠리의 야경. 아들은 한동안 이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베흐사이유 궁전을 가다.

빠리의 날씨는 변덕쟁이다. 어제는 그렇게도 따듯하더니 오늘은 베흐사이유행 RER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칼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든다. 아들은 지난여름에 베흐사이유 관람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궁전 앞에서 줄만 서다가 돌아갔었단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베흐사이유 궁전을 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비수기라 그런가 다행히 사람들은 없지만 추운 날씨가 복병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궁전 안을 볼 때는 괜찮았었다. 궁전 정원을 둘러보려는데 얼마나 추운지 온 몸이 와들와들 떨려온다.

15분쯤 정원을 걷다가 나와 미순이는 포기를 선언했다. 이런 날씨에 정원을 둘러보는 건 무리였다.

베흐사이유의 매력에 흠뻑 빠진 아들은 혼자라도 정원을 둘러보겠단다.

우리는 30분 후에 궁전 앞에서 만나기로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지나서도 녀석이 안 나타난다.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아인데 무슨 일이지? 혹시 길이 엇갈렸나?

 

 

 

 

 

미순이와 나는 추위에 와들와들 떨며, 걱정스런 얼굴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잠시 후, 아들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땀까지 흘리며 뛰어온다.

정원이 얼마나 넓은지 사진만 팡팡 찍고 막 뛰어다녔는데도 한 시간이나 걸렸단다.

 

 

 

                    <아들이 한 시간 동안 추위 속을 뛰어다니면서 돌아본 베흐사이유 궁전의 정원>

  

이번 여행은 아들에게 빠리의 나머지여행이다.

나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또 빠리에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느긋한데,

아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지난여름에 못 가본 곳, 지난여름에 감명 깊었던 곳을 다시 가보는 여행길이

바쁘기만 하다. 게다가 내일은 마침 세일도 시작되니 쇼핑도 해야 한다.

빠리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아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여행 셋째 날 일정은 쇼핑이 가장 큰 행사다.

오전에 호텔 근처에 있는 몽빠르나스 공동묘지에서 모파상과 사르트르, 보뵈르의

묘지를 둘러보고 미순이네 가족과 샹제리제거리에서 점심을 먹고..쇼핑길에 올랐다.

엄청난 쇼핑을 한 건 아니지만, 시어머님과 친정엄마 선물을 비롯해서 아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보니 다리도 엄청 아프고 시간은 속절없이 잘도 흘러간다.

겨울 세일 첫날이라 그런 가 프렝땅백화점과 갤러리아 라파엘르는 만원사례다.

쇼핑하는 일이 관광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

내가 꼭 사주고 싶었던 물건을 사고 만족해하는 아들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다.


 

 

 

이제, 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잠이 안 온다. 아들도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새벽까지 수다를 떤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마음이 풍성해질 때까지, 그래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지워져서

없어질 때까지 아들의 존재를 내 가슴에 가득 채웠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은 내 품 안에 가두어두는 것이 아니라 좁은 부모의

영역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더 큰 날개 짓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욕심을 포기하고,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아들의 미래를 위해... 태양이를 내 품에서 내려놓고 더 강건하게 훌륭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들에게 언제나 넉넉하고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야한다.


 

아들은 빠리가 초행길인 엄마가 걱정되는지 그냥 공항까지 혼자 가겠단다. 그럴 수는 없다.

내가 고집을 피우자 아들은 지하철노선도를 펴 놓고, 우리 호텔에서 샤를 드골공항까지 가는 길과

다시 공항에서 약속장소인 빠리 15구로 돌아가는 지하철노선도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으윽, 갑자기 시골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빠리 한국인 미용실에 들려서 파마를 하고 오는 것이 내 여행일정에 있었다. ㅋㅋ>


 

                   

 

 

우리는 웃으면서 헤어졌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평소처럼 실없이

우스개 소리도 하고, 씩씩하게 포옹을 하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오늘의 헤어짐은 내일의 만남과 행복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생각하면서...

내 사랑 아들과 즐겁게 헤어졌다.


추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울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엄마! 서울이 넘넘 추워... 서울은 예고도 없이 눈이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

      했단다. 아들은 은근히 따뜻한 엑스를 그리워하는 눈치다.

      이제, 아들은 힘든 본과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힘내라 아들! 넌 할 수 있어! 널 사랑하는 엄마아빠가 사랑의 기를 모아서 보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