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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다/프랑스 구석구석

여자 셋이 프로방스 꼬따쥐흐를 누비다1

 

여자 셋이 프로방스 꼬따쥐흐를 누비다1

엑스와 막세이 그리고 아비뇽 (2008년 4월19,20,21일)


“언니. 남편이 9일 동안 북경으로 출장을 간대. 혼자서 어찌 지낼지 걱정이야.”

“언제 가는데? 가만있자...4월 중순이면 내 일도 끝날 것 같은데, 우리가 놀러갈까?”

“꺄악~ 정말? 언니가 온다면 나야 좋지...”


남편의 출장을 앞두고 선배언니랑 인터넷으로 나눈 대화다.

작품을 끝내고 동유럽으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올까 생각 중이었다는 선배는

재빨리 진로를 수정해서 친한 후배와 함께 프로방스로 날아온단다.

그 소식에 남편도 쾌재를 부른다. 어리버리한 마누라를 혼자 두고 출장을 갈 일이 걱정이었나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직 이곳 생활에 적응이 덜 됐고 프랑스어도 잘 못하는 내가 두 사람을 이끌고

여행을 다닐 일이 끔찍하다.

나만 믿고 거금을 들여서 이곳으로 여행을 온다는데, 실망만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내가 이런 두려움을 전하자 서울에서 득달같이 명쾌한 답장이 날아왔다.


“그냥 맛있는 커피만 마실 수 있으면 돼! 우린 더 이상 바라는 거 없어!”

 

 

 

 

 

 

두 사람의 소박한 바람에 힘을 얻은 나는 부지런히 준비를 시작했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을 오가면서 정보를 수집해두고, 깐느와 니스를 여행하기 위해서

테제베와 민박집을 예약해두고, 손님맞이 이불빨래며 대청소도 하고... 하루하루가 분주했다.


이번 여행은 나의 첫 배낭여행이다. 그동안 남편에게 의지해서 다녔던 여행과 달리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해야 하고, 자동차 없이 기차와 버스 그리고 배를 갈아타며 여행을 해야 한다.

두렵지만 설렌다.   

 

두 여자가 도착한 날은 4월18일 밤.

그날 밤, 막세이공항은 여자들 셋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소리로 흥겨웠다.

남편은 그런 우리 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는 첫날, 그러니까 4월 19일

남편이 베이징으로 출장을 떠나는 날이다. 남편을 배웅한 다음에 몸도 풀 겸 엑스시내를 돌기로 했다.

(물론 내게 엑스는 여행지는 아니지만 ㅋㅋ)

 

토요일 오후의 엑스는 넘쳐나는 관광객들과 젊고 아름다운 학생들로 축제분위기다.

두 사람은 따뜻한 프로방스의 햇살과 더불어 아름다운 엑스에게 홀딱 반해서 환호성을 한다.

자칭타칭 가이드인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흐뭇하게 엑스시내를 누빈다.

 

성 소뵈르성당을 지나, 꾸흐 미하보로 향하는 길. 골목골목 이어진 길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꾸흐 미하보가 끝나는 길에서 시작되는 이탈리아 거리도 지나친다. 그곳에서는 그라네미술관도 멀지 않다.

두 사람은 지나가는 길마다, 보는 건물마다, 너무너무 아름답다며 난리난리다.

그들의 감탄사 때문인가, 평소에 무심하게 다녔던 엑스의 골목길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간단한 점심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의 여행일정을 의논한다.

물론, 가이드인 내가 짜놓은 계획을 발표하는 정도였지만, 맛있는 커피를 마신 두 사람은

그저 모두모두 다 좋단다. 다 알아서 하란다. ㅎㅎㅎ

 

그날 저녁은 환영 파티겸 배낭여행 출정식. 남편은 오늘 파티를 위해서 스테이크 고기와

포도주를 잔뜩 사놓고 갔다. 덕분에 그날 밤, 세 여자의 파티는 흥청망청 대성공이었다.     

 

 

 

 

 

 

4월 20일. 어제 밤, 우리의 첫 여행을 축하하는 포도주파티가 조금 과했나보다.

우리의 과음을 탓하며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막세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엑스와 막세이는 5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요금은 4.6유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었던 까닭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막세이의 개선문. 엑스에서 출발한 버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선문을 지나 생 샤를역까지 씩씩하게 걸어갔다.

                      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바라 본 막세이 풍경이 장관이다. >

 

 

 

 

<신발끈을 동여매고.. 막세이 탐험 시작~>

 

 

막세이 생 샤를 역을 나와 아텐(d'Athenes)거리를 걸어서 막세이의

메인스트리트인 칸비에흐(La Canebiere)거리를 지나 옛 항구에 도착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비가 많이 온단다. 그래선가 바람이 심하다.

항구를 대충보고 노트르담 드라 가르드 성당으로 향한다.

산꼭대기에 있는 성당은 차로도 한참 올라갔던 곳. 오늘은 걸어서 간다.

골목골목을 돌다보니 길을 잃었다. 용감하게 프랑스아줌마한테 길을 묻는다.

왼쪽으로 돌아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고 계속계속 올라가란다.

이 정도쯤이야 간단하게 알아듣는 말인데... 두 사람이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내 어깨가 으쓱해진다.

 

 

 

 

 

                    <성당 내부. 금박을 입힌 장식이 화려하다. 막세이가 항구도시라 그런가

                     성당 안에는 선박의 안전을 기원하는 상징물들이 많다.>

 

 

30분 가까이 걸어서 노트르담 드 라 갸흐드 바실리크 성당을 오른다. 바람이 거세다.

성당에서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막세이 시가지와 지중해바다 그리고 이프섬 등을 볼 수 있다.

환상적인 경치에 두 사람은 홀딱 반한 눈치다.(나도 처음 왔을 땐 환호성을 질렀으니까 ㅋㅋ) 

성당의 화려함도 마음에 들어 한다.

성당 아래 휴게실에서 미리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먹고 성당을 나서는데 비가 온다.

 

 

 

 

                        <성당에서 바라 본 막세이 시가지와 지중해 바다>

 

 

바람은 점점 거세진다. 바람에 우산이 막 뒤집힌다. 이대로 산을 내려가는 건 무리다.

마침,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항구로 내려왔다. 비가 내리는 것과 동시에

막세이의 경치도 돌변한다. 항구도시의 낭만이 일시에 사라지고 썰렁한 스산함만이 남는다.

날씨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지다니...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비에이유 샤히떼로 향한다.

 

나는 무모한 가이드다. (불어발음으로는 기드. 두 사람은 나를 기드라고 불렀다)

여행의 기본인 지도도 없이 비에이유 샤히뜨(Vieille Charite)를 찾아나선 것이다.

예전에 갔던 곳이고, 길 찾기에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졌다는 자만감때문이었다.

그런데...아무리 막세이의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도 비에이유 샤히뜨를 찾을 수가 없다.

(지하철을 거꾸로 타고 내렸으니 그럴 수밖에) 비는 점점 거세지고 날은 점점 쌀쌀해졌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다. 할 수 없이 샤히뜨를 포기하고 엑스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으으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걱정이다.

 

 

 

 


 

4월 21일. 다행이 아침에는 하늘이 맑다. 오늘 일정은 아비뇽.

일 년에 2백일이 넘게 미스트랄이 강하게 부는 도시라는데 오늘은 또 얼마나 심할까?

우리 집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30분. 차표를 끊고, 아비뇽 행 시외버스에 오르면서도

날씨 걱정이 한참이다. 비가 오기 전에 빨리 아비뇽을 돌아다녀야 할 텐데...

 

아비뇽에 도착하니 날씨가 화창하다. 미스트랄도 안 분다. 아비뇽이 세 번째인데,

이렇게 날씨가 좋기는 처음이다.

 

 

 

 

 

 

 

 교황청(Palais des Papes)과 호세 돔 공원(Rocher des Dome)을 둘러보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생 베네제 다리(Pont St-Benezet)-일명 아비뇽다리를 보러 혼강으로 간다.

 

 

                   

 

 

                  

 

 

 

끊어진 아비뇽다리가 주는 느낌이 왜 그리 좋은지...

우리는 강가에 앉아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하염없이 다리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우리가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 안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정말정말 행복했다.

유유히 아비뇽을 흐르는 혼강의 물결이 평화로웠다.

까르르 까르르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혼강을 따라 흘렀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멋진 추억을 더 만들어야지?

우리는 시청 앞 광장에 늘어선 식당에서 멋진 프랑스식 점심식사를 즐긴다.

 

다시 아비뇽을 느끼고자 골목골목을 누빈다. 따뜻한 햇살이 산책하기에 알맞게 비친다.

아비뇽의 관광 상품 가게에서 프로방스풍의 예쁜 식탁보와 앞치마 등등 선물을 산다.

선배는 프로방스를 집으로 가져가는 기분이라며 행복하게 웃는다. 

 

 

 

 

 

이제 아비뇽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래오래 이곳에 머물고 싶지만 우리는 내일 새벽같이 니스로 떠나야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비뇽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내린다.

하하하 역시 나는 날씨 운이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