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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다/프랑스 구석구석

우리의 첫 유럽여행2

 

재불 한국 과학기술자 협회! 프랑스에서 사는 한국인 과학기술자들 모임이다.

직장을 갖고 있는 일반회원부터 석사, 박사과정 회원들까지 다양하다.

모두들 청운의 꿈을 안고 멀리 프랑스까지 공부를 하러 온 사람들이겠지.

11월 2일. 학술강연과 총회가 열리는 시간에 회원가족들은 근처 그흐노블 관광에 나섰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관광버스에 오르는데 흥흥 기분이 좋아진다. 남자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여자들은 신나게 관광을 하다니...이 무슨 축복인가 싶다.

프랑스에 와서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고 단체로 관광을 하려니 국내여행사를 따라서 유럽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젊은 엄마들이 많은 탓인지 어린 아이들도 참 많다. 이제 백일 된 아기를 안고 버스에

오른 젊은 엄마도 있다. 에고~ 얼마나 힘들까.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희은엄마 선옥씨는 영어나 프랑스어가 아닌

한국말로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며 연신 재잘재잘 신났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지라 서로에 대한 소개를 하는데, 오잉... 대부분 프랑스에 10년 이상씩 살았단다.

젊은 나이에 유학을 와서 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를 낳고, 자리를 잡은 경우 같다.

흥미로운 것은 엄마들은 한국말을 하는데 대부분 아이들은 프랑스어를 한다는 사실.

아이가 프랑스말로 칭얼거리면 엄마는 한국말로 아이를 달랜다. 물론 급하면 엄마도 프랑스어가 튀어나온다.

내 나라 말보다 프랑스 말이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하라고 강요하는 건 물론

쉽지 않겠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이다.

 

그런데 근처에 앉은 4살짜리 꼬마가 한국말로 칭얼거린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아이랑 엄마를 번갈아 보았다.

야무지게 생긴 아이 엄마는 프랑스에 온지 11년 됐단다. 서울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남편과 유학을 왔고,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파리에서 일을 하게 돼서 이곳에 서 아이들을 낳고 주저앉게 됐단다.

자신도 교육학 석사까지 마쳤다는 젊은 엄마는 참 똘똘하다. 아이들의 우리말 교육을 위해서 집에서는 꼭

한국말을 쓴단다. 아이들이 자라서 학교를 가면 3년 만에 프랑스 말을 배우지만 우리말은 평소에 안 쓰면

영영 못 배우게 되기 때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생각이 곧고 바른 젊은 엄마가 참 예뻐 보인다.

 

 


 

천길 낭떠러지라는 말이 실감나는 산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Villard de lans에 있는 Grotte de Choranche.

석회지대가 많은 프랑스답게 동굴도 웅장하다. 분위기는 우리나라 동굴들과 사뭇 다르다. 가장 다른 건,

동굴을 공개하는 퍼포먼스. 우리나라 동굴들은 가이드의 설명 없이, 죽 늘어선 조명 길을 따라서 순례를 하듯이

다녀오는 길인데... 이곳은 가이드가 따라다니면서 그때그때마다 조명을 켜주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어쩌면 이 방법이 12시간 이상 밝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나라 동굴보다 동굴의 생태를 위해서는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동굴의 하이라이트는 천지창조! 웅장한 천지창조 음악과 함께 멋진 조명 쇼가

어우러져서 동굴의 풍경을 배가 시킨다. 선옥씨는 너무 멋있다며 탄성을 짓는다.

삼척의 환선굴을 못 봤기 때문이겠지? 갑자기 예전에 남편과 함께 환선굴을 보기 위해서 헥헥거리며 1시간을

걸어 올라가던 기억이 난다. 너무 더워서 반바지에 민소매차림으로 갔다가 환선굴 안에서 1시간이상 추위와

공포에 덜덜 떨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환선굴도 이렇게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공개를 한다면 그 가치가 몇 배로 뛰지 않을까 싶다.

 

11월 3일 새벽. 전 날, 만찬을 끝으로 공식적인 총회 일정이 끝났다.

우리는 새벽같이 샤모니(chamonix)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이러다가 샤모니에서 아무것도 못 보는 거 아냐? 갈등이 생긴다.

만약, 미리 샤모니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여행일정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에잇! 운에 맡기는 수밖에... 날씨 운이 유난히 좋은 우리 팔자를 믿으며 샤모니로 향했다.

역시 그흐노블을 벗어나자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우리는 GPS 톰톰이 제시한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따라 달리는 길을 택했다. 알프스자락에 위치한 마을들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특히 샤모니로 가는 터널이 폐쇄돼서 본의 아니게 산을 넘게 됐는데 그 풍경이 압권이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때마다 나타나는 그림 같은 집들. 아름답다는 말 외에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다.

그런데, 초보여행자 우리 부부는 이 길이 맞나...하는 걱정을 하느라 멋진 경치를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아쉽다. 정말... 

수많은 알프스 산장마을을 지나 드디어 도착한 샤모니의 날씨는 쾌청! 야호 신난다.

 

 

샤모니는 유럽 대륙의 최고봉인 몽블랑 북쪽의 산기슭에 자리 잡은 세련된 휴양도시다.

샤모니에 들어서자마자 눈 덮인 몽블랑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아무리 찾아도 없다.

오피스 투어리즘 앞에 있다고 하는데, 샤모니는 곳곳에 i가 있다.

우선 차를 주차하고(관광도시답게 곳곳이 유료주차장이다) 걸어서 호텔을 찾기로 하고 소쉬르 광장으로 향했다.

눈이 보배다. 혹시나 하고 눈을 돌리는데 어! 바르마 광장 너머로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보인다.

생 미셜교회 앞, 시청사 바로 옆이다. 대부분 호텔들이 그렇듯이 주차시설이 없다. 대신 친절한 카운터 언니가

공짜 주차장 네 곳을 알려준다. 오케이! 우리는 우선 방을 확인한 뒤, 차를 몰고 부랴부랴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에기유 뒤 미디(Aguille du Midi)행 케이블카 요금은 1인당 37유로.

몽블랑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 요금이다. 그런데 막상 케이블카에 오르니 불안불안.

남편은 안전관리측면에서 무진장 허술해 보이는 케이블카 승강장이며 시설들이 눈에 거슬리나보다.

이렇게 위험한 줄 알았다면 케이블카를 타지 않았을 거라며 투덜거린다.

그래도 에기유 뒤 미디까지 한 번 더 케이블카를 바꿔 타고, 엘리베이터까지 타고 중앙봉으로 올라갔다.

해발 4천 미터에 가깝다. 멀리 건너다보면 샤모니 계곡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흰 눈에 뒤덮인 몽블랑 산꼭대기,

왼쪽으로는 날카롭고 뽀족한 드휘(Dru 3754m)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레 그랑조하스(Les Grandes Jorasses, 4208m) 등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산들이 펼쳐져있다.

아쉽게도 엘브로네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는 시즌이 아니라 그런가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마지막 저 고지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이동한다. 남편은 또 안전문제를 들먹인다. ㅋㅋ>

 

하늘에서 가장 가깝게 태양빛을 받으며 하얀 눈으로 뒤덮인 몽블랑과 그 주위의 지구의 지붕 같은 산들을

바라보다가 에기유 뒤 미디 전망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참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용감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전망대를 오를 때마다 숨이 차고 속이 미식거리는 고산증세를 느끼는데...

전망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보니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중간지점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 많은 사람들이 빙벽등반장비를 갖추고 3842m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해발 2317m의 중간역 프랑 드 레기유(Plan de l'Aiguille)에서는 행글라이더를 즐기는 사람들이 수두룩이다.

한 세 시간쯤 에기유 뒤 미디에서 노는데 날씨가 정말정말 좋다. 여름에도 춥다는 정보를 듣고 미리 옷을

든든하게 껴입어서 그런가 덥다고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온화하고 바람 한 점 없다.

역시 우리의 날씨 복은 타고 난 것 같다.

 

 

호텔은 통나무집 같다. 나무로 된 바닥은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작지만 깨끗한 호텔에서

우리는 밥을 지어먹는다. 집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먹어보는 밥이다. 취사시설이 따로 있는 호텔이 아니라

휴대용 전기렌지를 이용해서 냄비에 밥을 짓기만 했는데도 정말 꿀맛이다.

그동안 느끼한 프랑스 음식 때문에 더부룩했던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다. 내 입맛이 왜 이렇게 촌스러워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랴~ 생긴 대로 살아야지. 내가 밥을 해 먹겠다며 쌀과 김치, 김 그리고 고추장과 라면을

여행가방에 챙기자 남편은 궁상스럽다며 나를 말렸었다. 하지만 지금 남편은 내게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며

맛있게 밥을 먹는다. 김치와 고추장, 김이 전부인 오늘 저녁이 어제 밤에 먹었던 프랑스식 만찬보다 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