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로 떠난 행복여행6-루체른/ 2009년 8월17일~18일
루체른에 들어서는 순간, 스위스의 다른 도시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매력이
한 눈에 느껴진다. 취리히보다 차분하면서 단정한 모습이다. 지금 시간은 오후 4시30분.
도시를 걸어 다니며 즐기기에도 마땅한 시간이다.
호수 위로 쏟아지는 여름 햇살도 다소 누그러진 모습이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우리는 부지런히 피어발트 슈테터 호숫로 간다.
아무리 여름 해가 길다지만 저녁을 먹고, 시내 구경을 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스위스는 어느 도시건, 아름다운 호수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그런 도시만 다녀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호수가 없는 스위스의 도시는 상상이 안 된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화려한 꽃으로 장식을 한 호수가 너무 아름답다며 활짝 웃으신다.
루체른은 인구 7만 명의 소도시로 리기, 티틀리스, 필라투스 등 알프스고봉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그래서 유럽의 지붕, 알프스를 오르려는 여행객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란다.
이미 알프스를 다녀 왔지만, 다시 한 번 티틀리스로 오르고 싶은 욕심도 슬슬 생긴다.
그렇지만 이번 우리 여행 일정은 여기까지다. 오늘 루체른을 마음껏 즐기고...
내일 우리는 엑스 우리집으로 돌아가야한다. 우리는 피어발트슈테터 호수를 출발해서
천천히 루체른 구시가지를 돌아다니기로 한다.
루체른에서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은 카펠교.
루체른의 상징일 정도로 유명한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란다.
운치가 넘치는 나무다리는 멋진 지붕까지 있다. 그냥 다리가 아니라 예술품 같다.
원래는 1333년에 세워졌고, 지붕 천장에는 17세기에 루체른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수호성인을 새긴 110장의 판화가 걸려있었단다.
그런데 지난 1993년 관광객이 버린 담배꽁초때문에 불이나서 다리 대부분이 타버렸단다.
다리 위를 걸으며 살펴보니 입구는(우리가 출발한 기준에서 ㅎㅎ) 오래된 목조고,
조금 지나가면 불에 그을려서 시커먼 목재가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리는 새로 지은 듯 깨끗하다.
내가 이렇게 다리를 꼼꼼하게 살펴 볼 수 있었던 건 모두 남편 덕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남편은 여행 전에 공부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나는 공짜로 묻어서 갈때가 많다. ㅎㅎㅎ
오늘, 나는 남편을 루체른 공식 관광가이드로 임명한다.
카펠교를 나온 우리는 무제크성벽을 찾아 나선다. 1408년 당시 루체른을 감싸고 있던
성벽의 일부로 지금은 구시가 북쪽으로 9백미터 정도만 남아있단다. 성벽을 찾아가는 길은
도시를 빙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문득 서울에서 했던 성벽따라 걷기가 떠오른다.
우리는 4번 정도로 나누어서 서울에 남아있는 성벽을 따라서 걸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었다.
무제크성벽을 따라 구시가지를 걸으며 우리는 또 다시 즐거운 추억을 만든다.
오늘이 공식적으로는 스위스여행 마지막 날이다. 아쉽다.
그래서 더 루체른을 돌아보는 이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들과 속절없이 장난을 치고 히히하하 웃으며 루체른을 걷고 있는 이 시간이
가슴 벅차도록 행복하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엄마랑 아들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던 시간도
그들과 함께 여행을 했던 시간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
우리들이 함께 하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지나가지 말고...
그냥 내 곁에 남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심한 시간은 잘도 지나간다.
다리가 아프도록 루체른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
토르발트젠의 작품인 <빈사의 사자상>을 보러 간다.
1792년 빠리 튈르리 궁전에서 루이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왕비를 지키려다가 전사한 스위스용병
786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각이란다.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이 애처러워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엾은 사자의 모습은 곧 남의 나라 왕을 위해 죽어간 스위스용병의 슬픔이기도 하다.
새삼, 돈에 팔려가서 불쌍하게 전사한 스위스용병과 용병을 파견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스위스의 과거가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래도 지금 스위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나라가 되었으니... 결론은 해피앤딩인가?
루체른의 마지막 밤에 소나기가 내렸다. 저녁산책을 나갔던 남편과 아들이 비를 피해서 막 뛰어들어온다.
소나기는 스위스의 열기를 잠시 식혀준다. 에고고~ 피곤해..를 외치며 잠자리에 들려는데...
엄마가 또 수첩을 내미신다. 으윽~ 또 메모고문이 시작된다. 엄마는 엑스 우리 집에 도착한 날만 빼고
쭉~ 뭔가를 끄적끄적 수첩에 적고 계신다. 아직도 소녀같은 감성이 펄펄 넘치는 우리 엄마답다.
엄마랑 여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저녁마다 그날 여행한 곳을 적어드렸다.
물론 꼼꼼한 메모는 절대로 아니다. 대충대충 다녀 온 곳만 적어드리는데도
엄마는 내가 적은 메모를 읽어보시고, 흡족해하신다. 이렇게 메모를 해 두지 않으면
어디를 여행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신단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옛날 사진을 뒤적거리다가 "어? 우리가 여기도 갔었나? " 이렇게 뜬금없는 소리를 할 적도 많다.
기억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모든 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
영원히 가슴으로 이번 여행을 기억하고 싶다. 아주아주 행복했노라는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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