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의 은신처, 쌩트 보메
프로방스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변치 않는 지조를 자랑하듯 사시사철 푸르르다.
침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겨울에도 프로방스에서는 초록빛 나무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프로방스의 가을은 심심하고 지루하다.
푸른 침엽수 사이로 노랗게 물든 나무 몇 그루 보이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나는 가을만 되면, 가슴이 시리도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가을을, 단풍을 그리워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09년 어느 가을 날, 우리는 우연처럼 한국의 가을풍경을 만났다.
한국의 가을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프로방스에서는 만나기 힘든 가을단풍이었다.
우리가 가을단풍을 발견한 곳은 르 마씨프 드 라 쌩뜨 보메(Le massif de la sainte baume).
쌩뜨 보메 산악지대였다. 프로방스에 가을단풍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을 거라는
미천한 나의 편견을 완전히 없앤, 대단한 발견이었다.
마씨프(Massif)는 우리말로 산괴, 산악지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쌩뜨 보메라는 산이 하나 덜렁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덩어리의 산들이
모여서 르 마씨프 드 라 쌩뜨 보메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이다.
르 마씨프 드 라 쌩트 보메는 행정구역상 부쉐 뒤 혼(bouches du Rhone)지방과
바흐(du Var)지방에 걸쳐있고 고도는 1148미터. 프랑스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장 높은 산악지대다.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많아서 산세도 한국과 비슷하고 가을풍경도 닮았던 것 같다.
쌩뜨 보메에는 유명한 동굴이 하나 있다.
바로, 라 그호뜨 드 쌩트 마히 마드렌느(La grotte de sainte Marie-Madeleine).
막달라 마리아가 은둔생활을 하며 만년을 보낸 곳이고 그녀의 유해가 매장된 곳이다.
(프랑스사람들은 이렇게 굳게 믿고 있다.)
예수가 죽고,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를 피해 에베소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을
전전하다가 프랑스로 건너오게 되는데, 막세이(Marseille)에 도착한 마리아는 이곳 쌩뜨 보메 동굴에
정착해서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동굴에는 수도원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다녀간다.
막달라 마리아의 전설은 에베소와 이집트 그리고 그 주위지역에서 지금도 고대문서가
발견되고 있어서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단다.
2010년 봄, 우리는 문득 쌩뜨 보메가 궁금해졌다.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을풍경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봄꽃이 만발한 쌩뜨 보메도 여전히 아름다울까, 막달라 마리아의 성지는
여전히 순례자들로 붐비고 있을까...
우리는 다시 쌩뜨 보메를 찾아갔다. 엑스 우리 집을 출발해서 막셀 빠뇰의 고향인
오바뉴(Aubagne)를 거쳐 이번에는 쌩뜨 보메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길을 여정으로 삼았다.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지만, 자동차로 쉽게(?) 산악지대를 통과하며
쌩트 보메의 산세를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쌩뜨 보메의 동굴과 가장 가까운 마을은 플랑 도쁘(Plan-d'Aups).
이름처럼 산악지대 가운데 넓은 평원 같은 마을이다. 이 마을 오피스 뚜히즘을 찾아가면
친절한 프랑스할머니가 자근자근 쌩뜨 보메의 동굴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오피스 투히즘은 작년에 갔었으니까 올해는 통과!
그런데, 마을을 지나자 노란 유채 밭이 이어진다. 우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쌩뜨 보메 동굴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로 접어든다.
아! 바로 이거다. 이 느낌 때문에 우리는 또 이곳을 찾아왔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등산로입구의 풍경.
내가 지금 프랑스가 아닌 한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일으키는 풍경.
우리의 향수와 그리움을 달래줄 수 있는 풍경, 프로방스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며 우리는 순간이동을 경험한다.
한국의 산을 오르고, 산에서 만난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프로방스의 산에서는 이렇게 약수터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이렇게 30분쯤 산을 올랐을까...
쌩뜨 보메 동굴성지 입구가 보인다. 이제 우리는 다시 프로방스 땅으로 돌아온다.
성지는 입구부터 조용하고 경건하다.
마리아는 예수의 최후 순간과 부활의 최초순간을 함께 한 사람이란다.
예수의 연인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그녀가 임신한 아이가 프랑스왕조를 이루었다는 전설도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을 이단으로 선포한 베드로교황을 피해 이곳으로 왔고,
평생을 이 동굴에서 은둔했다고 한다.
그녀가 죽은 뒤, 그 유해는 나중에 베즈레이의 성 막달레나 대성당으로 옮겨졌다는데...
쌩뜨 보메 측의 주장은 다르다. 지금도 이곳에 마리아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단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모두가 날조된 신화 같은 전설인지 모르겠다.
쌩뜨 보메의 품은 넓다. 화사한 봄날처럼 따뜻하다.
막달라 마리아를 거두어주고 품어주었던 것처럼 쌩뜨 보메는 우리를 포근하게 보듬어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 땅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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