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보드 프로방스(Les beau de provence)
레 보드 프로방스로 가는 길, 파릇한 새잎이 돋기 시작한 포도밭이 따뜻한 햇살 속에 싱그럽게 빛났다.
키 작은 포도밭을 지날 때는 잘 몰랐다. 뻘쭘하게 솟은 시프러스가 설렁설렁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주차장에 내리는 순간 미스트랄이 무차별 공격을 가해온다.
세상에... 지금까지 만났던 미스트랄 중 가장 강력하다. 자칫 방심하면 바람은 내 몸까지 날려버릴 것 같다.
아비뇽의 미스트랄은 상대도 안 될 정도다. 바람은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친다.
다행인건 품이 넉넉한 햇살이 바람에 질세라 레 보드 프로방스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햇살에게 힘을 얻은 나는 중세시대 번영을 누렸던 보(BEAU)가문의 자취를 따라나선다.
주차장을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기념품가게들이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타박타박 돌길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는 길, 길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아기자기 화려한 프로방스의 기념품들, 예쁜 것들을 바라보자니 눈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언덕을 조금 오르니 길이 양 갈래로 나뉘어 진다.
왼쪽은 폐허기 된 레 보의 성채(Cheateau des Beau)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생 블레즈 예배당(Chapelle Saint-Blaise)으로 가는 길이다.
발길은 레 보 가문의 옛 성채로 향한다. 언덕의 정상에 위치했던 난공불락의 성은 이제 폐혀가 된 상태다.
한때 남프랑스에서 최강의 세력을 떨쳤던 레 보 가문은 80개의 도시를 거느렸었단다.
14세기 말에 보 가문의 혈통이 끊기면서 처음에는 프로방스 공국, 나중에는 프랑스왕국의 지배를 받았단다.
그리고 1632년 루이 13세의 재상 리슬리외에 의해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단다.
예전에 4천명이 넘었던 도시의 인구가 지금은 3백 명 정도에 불과하단다.
그 옛날 보 가문의 영광을 추억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태양이 넉넉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성질 사나운 미스트랄의 신경질을 막아내지 못했다.
바람에 미친 듯이 흩날리는 스카프자락을 동동 휘감으며 보 가문의 옛 위용을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바람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너무 큰 바람이라 그랬던가 아니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바람이 나를 놀리듯 얼음하고 멈춰버린 것일까. 관광객들이 바람을 피해서 바위 밑으로 숨어들었다.)
우편용으로 식용으로 썼다는 비둘기들의 집 앞에 섰을 때 바람의 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거센 미스트랄에 시달리다보니 레 보 가문의 옛 영광을 함께 추억할 여유도 없어진다.
바람을 피해 바위 밑에 숨어보지만 소용없다. 바람은 피했을지 몰라도 햇살의 품을 벗어나니
몸의 기온이 떨어지고 와들와들 떨려온다.
아마도 미스트랄이 레 보의 성채를 파괴하는데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난무한다.
그래도 성채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환상이다.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 가운데 군데군데 자리 잡은
흰 바위산이 인상적이다.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바람이 조금 잦아든다. 마을 전체가 유적지 같은 느낌이다.
사랑하는 강아지와 레 보드 프로방스를 여행중인 할아버지를 만나는 순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샤뻴 생 블레즈는 프랑스의 다른 예배당과 달리 작고 가로로 긴 형태다.
그나마 예배당이 적다고 투덜거리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시 증축을 한 것이라는데,
다른 샤뻴들과 차별화된 모습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
카페 데 보(Cafe des Beau)에서의 점심은 그작저작.
지난번에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보다 겉모습은 크고 화려하지만 음식은 별로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 레스토랑도 그닥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가끔, 왜 사람들이 프랑스음식에 감동을 하는지... 왜 맛난 우리 음식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내가 우리 음식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요리가 프랑스요리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물론 각 나라 음식의 개성 차이는 인정하지만...
작디 작은 레 보드 프로방스는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마을들이 그렇듯이 이곳 사람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고향을
더 예쁘게 가꾸어서 관광 상품화하고 생활경제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변변찮은 우리네 입장에서 보면 부럽기 짝이 없는 곳이다.
거기다 또 하나, 레 보드 프로방스 사람들은 멋진 아이디어로 관광상품을 부활시켰다.
바로 옛 채석장을 이용한 소리와 영상의 갤러리 캐테드할 디마주(Cathedrale d'image).
매년 테마를 정해서 펼쳐지는 소리와 영상의 갤러리는 장대한 규모와 함께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작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막 피카소 전시회를 끝내고 잠시 휴관 중이었다.
올해는 오스트렐리아 전시회가 열린단다. 고흐나 피카소 같은 대작가의 전시회가 아니라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시회는 웅장했다. 50대의 영사기로 비추는 거대한 사진과 비디오가 현란하다.
오스트렐리아의 자연과 원주민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식민지화 했던 나쁜 인간(유럽인들에게는 영웅이겠지만)의
가족사진이 거대한 돌벽에 비춘다. 캥거루 몇 마리도 영상 속에서 뛰어다닌다.
한참을 이렇게 전시장을 걸어 다녔다. 카테드랄 디마주의 입장료는 7.5유로.
본전 생각해서 더 머물고 싶지만 다리가 슬슬 아파온다.
레 보드 프로방스를 떠나며 바라 본 마을이 햇살에 반짝인다.
어느새 미스트랄은 자취를 감추었다.
레 보 가문의 영광의 아쉬워하며 찾아오는 관광객의 머리 위로 햇살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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