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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ut! 프로방스/프로방스 도시산책

세잔의 산, 생트 빅투아르

 


세잔의 산, 생트 빅투아르.

막세이유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엑스로 오다 보면,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나는 한밤중에 막세이공항에 도착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후, 테제베 역에 내려서 집으로 오는 나바떼를 타려던 순간, 숨이 멎을 것처럼

벅찬 풍경을 만났다. 바로 생트 빅투아르 산이었다. 은백색의 커다란 산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서 있는 그 모습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 후, 나는 세잔도 이 멋진 산과 사랑에 빠져서

그녀의 모습을 수도 없이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았다.

 

 

 

 

 

 

 

 


백운석이 많이 섞인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 프로방스의 태양빛을 받아서

고혹적인 빛을 뿜어내는 산은 그 누구라도 첫눈에 반할 정도로 멋진 산이다.

 

그러나 세잔은 생트 빅트아르의 겉모습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험준한 산의 깊숙한 곳까지

찾아다니며, 생트 빅투아르를 만났다. 산은 그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산의 품을 파고들수록

화가의 고뇌는 깊어졌다. 세잔은 하루도 쉬지 않고 산의 품을 헤집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 앞에서 그는 수없이 절망했고, 그의 집착은 더 강해졌다.

 

 

 

 

      

 

 

 

 

산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고? 화가는 답을 찾지 못해 더 방황했고,

산을 그리는 일에 더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눈에 비친 사물이나 풍경을 해체하고 존재의 가장 깊은 뿌리들과 엉켜있는

그 무엇을 그린 것이다.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를 그리며 마음속의 영산을 찾은 것이다.

 

 

 

 

 

 

 


 

세잔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산, 생트 빅투아르를 가까이서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타야 한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좀 더 쉽게 빠른 시간에

생트 빅투아르를 돌아볼 수 있지만, 나는 지금부터 지금 버스를 타고 생트 빅투아르를 만나러 간다.

 

엑스 시내에서 출발하는 생트 빅투아르 행 버스는 두 가지 노선이 있다.

생트 빅투아르가 품고 있는 마을, 보브나흐그와 쀠루비에흐가 종점인 노선버스인데,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버스가 다니고 요금은 1유로다.

 

시간이 많다면 생트 빅투아르를 북쪽과 남쪽 두 방향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보브나흐그행 버스와

쀠루비에흐행 버스를 모두 타보고 싶지만 하루 동안 두 곳을 모두 돌아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생트 빅투아르의 더 잘생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남쪽코스, 쀠루비에흐행 버스를 타기로 한다.  

 

 


 

 

 

                      (피가소가 살았었고, 지금은 피카소가 묻혀있는 샤또 보브나흐그)

 

 

 

오늘 산책을 못 가지만 생트 빅투아흐 북쪽 산자락에 오롯이 안겨있는 마을 보브나흐그(Vauvenargue)도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곳에는 피카소가 사랑했던 샤또 보브나흐그가 있다.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샤또는 한때 프로방스 지방을 지배했던 왕의 소유였단다.

 

1958년, 노년의 피카소는 마흔 살이나 어린 아내 재클린(그녀는 딸이 있는 이혼녀였다)을 위해서

이 샤또를 구입했다. 피카소는 이곳에서 아내 재클린과 함께 말년의 삶을 행복하게 보냈고 죽어서도

이 샤또에 묻혔다. 그가 죽은 뒤 샤또는 재클린의 소유가 됐고,

재클린이 죽은 뒤에는 그녀의 딸에게 상속되었단다.

 

 

 

 

 

 

 

 

개인 소유의 샤또라서 평소에는 이 샤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2009년 재클린의 딸이

특별히 샤또를 개방했다. (2010년 여름에도 샤또를 개방했단다)

반가운 마음에 샤또 구경을 나섰었는데 아쉽게도 사진촬영은 철저하게 금지돼 있었다.

샤또 안에 전시되어 있던 피카소가 쓰던 가구들을 슬쩍 만져보았던 관람객은

관리자에게 호된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조심조심 남의 집을 몰래 구경하는 사람처럼 샤또를

둘러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샤또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발코니와 정원에서 바라본 생트 빅투아르였다.

 

피카소도 이 광경에 꽤 흥분했었나 보다. 그는 샤또 보브나흐그를 구입하자마자 친구에게

'내가 세잔의 생트 빅투아흘 샀다'며 자랑을 했단다. 그러나 피카소는 생트 빅투아르의 품에

안겨서 산을 그리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샤또 작업실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단다.


 

 

 

 

             

 

                             (엑스를 떠난지 20분만에 도착한 마을 똘로네.)

 

 

 

오늘 생트 빅투아르 산책은 내 친구, 야스나와 함께 한다.

10시 15분, 우리는 엑스 오피스투히즘 앞에서 쀠루비에흐(puyloubier) 행 버스를 탄다.

일반버스보다 작은 미니버스다. 우리의 목적지는 메종 생트빅투아르, 생트빅투아르의 집이다.

종점마을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생트 빅투아르가 더 멋있기 때문이다.

엑스를 출발한 버스가 20분쯤 지나자 산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첫 번째 산마을 르 똘로네에 도착한다.

넓은 광장과 플라타너스길이 운치 있는 똘로네 마을을 지나면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간다.

 

 

 

 

 

 

 

 

 

 

버스가 숲을 빠져나오자 병풍처럼 펼쳐진 산 생트 빅투아르가 보인다.

생트 빅투아르로 가는 버스를 처음 타는 나는 잔뜩 긴장한다.

산길에는 제대로 된 버스정류장도 안 보이고, 내려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버스는 쌩쌩 달리기만 한다.

어서어서 내리겠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메종 생트박투아르에서 내려달라고 부탁을 하자,

룰룰랄랄 산길을 달리던 운전수아줌마는 아직 산을 더 올라가야하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생긋 웃는다.  

 

 

 

 

 

 

 

 

 


엑스를 떠난 지 35분 만에 우리는 무사히 메종 생트빅투아르에 내렸다.

얌전한 야스나가 생트 빅투아르를 가까이서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며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한다.

올해 나이 마흔. 아직도 처녀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야스나는 세르비아계 프랑스인이다.

빠리에서 살았던 처녀시절, 완고한 아버지가 싫어서 무조건 처음만난 남자랑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났다는데...

처음만난 남자가 바로 지금 남편이란다. 다행히 능력 있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고...

딸은 빠리에서 아들은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야스나가 엑스에 둥지를 튼 건 1년 전. 그 전에는 런던에 살았었단다.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남편 덕분에 해외 살이 경험이 풍부하지만 아직 프로방스 생활에는

미숙한 것이 많단다. 그래서 프로방스 살이 3년차인 내가 그녀의 조언자가 되어주곤 한다. ㅎㅎㅎ



 

 

 

 

 

 

 


우리는 한동안 생트 빅투아르를 바라보았다. 정말 잘 생긴 산이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가을로 접어든 프로방스의 햇살이 산 정상으로 떨어진다. 다시 우리의 시선이 향한 곳은 벌판에

덜렁 서 있는 집 한 채, 메종 생트 빅투아르다. 이곳은 생트 빅투아르산 홍보사무실 같은 곳이다.

메종 안에는 생트 빅투아르 박물관과 레스토랑 카페가 있다.

 

 

 

 

 

 

 

 

 

메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주변을 산책한다. 메종 주변에는 야생방목장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잘 생긴 말들은 다 어디로 가고, 당나귀들만 보인다.

녀석들이 만들어놓은 배설물에서 솔솔 농촌의 향기가 올라온다.


 

 

 

 

 

 


메종 안으로 들어선 순간, 왜 그렇게 당나귀들이 많았는지 알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메종전시실은 온통 당나귀특집이다.

당나귀의 생태연구부터 습성까지 그리고 당나귀우유로 만든 비누와 사탕도 판매하고 있다.

당나귀고기로 소세지까지 만들어먹는다는 전시물을 읽는 순간 괜히 기분이 묘해진다.

 

 

 

 

 

 

 

 

 

생트 빅투아르 박물관을 둘러본 뒤, 담당자에게 홍보영화를 틀어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나는 두 번이나 봤지만 야스나에게 생트 빅투아르를 속속들이 알려주고 싶어서다.

영화는 무료로 볼 수 있고, 담당자에게 요청하면 영어로 들을 수 있는 해드폰을 빌려주기도 한다.

 

 

 

 

 

                                                                       (생트 빅투아르 박물관)

 

 

영화 상영시간은 30분. 지루할 것 같다며 걱정하던 야스나는 점점 생트 빅투아르의 역사와 생태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솔직히, 내게 영화의 내용은 어렵다. 그냥 그림을 보고 중간중간

들리는 문장을 종합해서 대충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선사시대 생트 빅투아르에 살았던 공룡이야기와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절 생트 빅투아르 주변의 상황 그리고 1989년에 일어난 생트 빅투아르 대화재

정도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홍보영화가 그렇듯이 영화가 특별히 재미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 5분 정도 이어지는

생트 빅투아르의 항공촬영장면이 압권이다. 바닥에 놓인 커다란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자면

내가 헬리콥터를 타고 직접 생트 빅투아르를 날고 있는 짜릿한 느낌이 든다.

생트 빅투아르의 속살까지 훤히 들여다본 것 같은 뿌듯함도 밀려온다.

 

 

 

 

 

 

 

 

 

영화를 보고 나온 시간은 11시 40분.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우리는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는 야외테라스로 나간다. 맨 얼굴로 앉아있자니 햇살이

점점 따갑게 느껴진다. 이런 나와 달리 야스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햇살을 즐기며

우리가 본 영화의 감동을 되새긴다.

그녀는 생트 빅투아르 정상에 있는 십자가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단다.

험한 항해를 무사히 끝낸 뱃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이 처음으로 만나는 산 정상에 십자가를

세우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그가 항구에 도착해서 처음 본 산이 바로 생트 빅투아르였단다.

막세이유 주변에도 산이 많았을 텐데... 왜 생트 빅투아르였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약간은 감동적인 이야기다.


 

 

 

 

 

 

 

 


우리는 생트 빅투아르의 품에 안긴 아기들처럼 노곤하게 햇살을 즐기다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음료수와 함께 햄과 버터가 듬뿍 들어간 프랑스전통샌드위치가 나왔다. 가격도 한없이 착한 5유로다. 


 

 

 

 

 

 

 

 

이 카페의 카푸치노도 예술이다. 커다란 잔에 크림을 듬뿍 얹어서 나온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를

고집하는 내가 입맛을 다실 정도로 맛있다. 크림이 사르륵 녹아내릴 듯 달콤하다.

커피 값도 마음에 든다. 카푸치노가 3유로, 카페 에스프레소가 1.5유로란다.

 

 


 

              

 

 

 

 

 

카페를 나온 우리는 천천히 주위를 산책한다. 앙증맞고 예쁜 올리브나무가 줄을 맞춰 서 있다.

볼수록 정이가고 예쁜 나무들이다. 생트 빅투아르의 발아래에는 이렇게 멋진 올리브나무들과

포도나무가 지천이다. 바람 따라 설렁설렁 춤을 추던 시프러스도 우리를 향해 눈인사를 건넨다.

 

지금 시간은 2시 5분. 산책을 마칠 시간이다. 그러나 실수 없이 2시 15분에 이곳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야만 우리의 산책이 무사히 끝날 수 있고, 엑스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제대로 된 버스정류장도 없는 산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우리는 산골소녀들처럼 잔뜩 긴장 한다. 저 멀리 버스가 온다.

세워달라고 손을 번쩍 들던 우리의 눈이 마추친다. 푸하하하 웃음이 터진다.

 

 


 

 

 

 

 

생트 빅투아르로 가는 버스 시간

*쀠루비에흐-->엑스

7:00/8:00/9:00/10:00/11:00/12:10/13:15/14:05/16:15/17:30/18:25/19:30/20:15

<쀠루비에흐를 출발한 버스는 10분 후, 메종 생트빅투아르에 도착한다.>


*엑스-->삐뤼비에흐

7:50/9:15/10:15/11:15/12:30/14:15/15:15/16:40/17:30/18:40/19:20

<엑스에서 메종 생트빅투아르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강 35분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