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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다/독일

독일을 달리다1-하이델베르크

 

 


독일을 달린다.1- 하이델베르크 /8월 13일

 

늘 그렇듯이 우리 여행은 고행이다. 아니, 고행을 자처하는 여행이다.

8박9일간의 독일, 체코여행을 시작하는 첫날, 우리는 새벽 2시에 집을 나섰다.

그래야 9백km를 달려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고속도로는 거의 암흑이다. 지금이 밤인지 새벽인지 분간할 수도 없고 도로를 달리는 차도 없다.

한여름인데도 새벽공기가 으슬으슬 춥다. 괜히 으쓱하니 겁이 난 우리는 두려움을 잊고자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추억이 가득담긴 우리의 수다보따리가 솔솔 풀려나온다. 그러고 보니, 3년 전에도

우리는 오늘처럼 로마를 향해서 새벽고속도로를 달렸었다.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는데 커다란 별똥별이

번쩍하면서 우리 앞으로 떨어진다. 순식간의 일이라 소원을 빌지는 못했지만 우리 여행길이

순조로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그흐노블을 지나 스위스 제네바를 지나칠 무렵, 동이 트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아름다운 스위스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서...우리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스위스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아! 정말 좋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엑상프로방스 우리 집을 떠나

이곳까지 11시간 30분을 달려왔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둥둥 떠오른다.

네카르 강가의 언덕에 위치한 하이델베르크는 인구 14만 가운데 3만 명이 학생인

대학도시이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곳이다. 차를 세우고 지하주차장을

나서자마자 두둥~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인다. 방금 면도를 한 남자처럼 도시도 깔끔하다.


 

 

 

 

 

 

 

 

 

 

우리는 먼저,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갔다. 13세기 무렵에 세워진 이 성은 라인 선제후의 성이 되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고 고딕양식부터 르네쌍스 그리고 바로크양식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뒤섞인 성으로

변모했단다. (선제후는 신성로마제국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황제 다음으로 높은 봉건제후다.)

 

 

정갈한 돌길을 따라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운치가 흐른다.  

따뜻한 햇살이 등 뒤로 쏟아진다. 어서어서 올라가라고 우리를 밀어준다. 

 

 

 

 

 

 

 

 

 

성 입구에 도착한 순간, 아름다운 도시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붉은색 기와지붕으로 가득한 도시풍경에 넋을 잃는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바라 본 카를 테오도르 다리>

 

 

 

 

 

 

 

 

 

하이델베르크성의 현재는 낡고 파괴된 모습이다. 17세기에 구교도와 신교도가 벌인 30년 전쟁,

성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인 팔츠 전쟁 그리고 갖가지 천재지변이 만들어 놓은 상처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는 먼저 성안에 있는 독일약제박물관 구경을 나선다.


 

 

 

 

 

 

 

 

 

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천천히 성안을 산책한다. 아름답기보다 웅장한 성의 매력이 새롭게 느껴진다.


 

 

 

 

 

 

 

 

 

 

성의 정원을 산책하다가 괴테의 비석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괴테가 빌레머 부인과

일생의 사랑을 나눈 곳이다. “나는 여기서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

대문호 괴테의 싯구가 가슴을 적셔온다.  그래서 괴테처럼 우리 가슴에 여행의 비문을 남겨본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이 듬뿍 담긴 여행을 하고 그리하여 행복했노라. ㅎㅎㅎ”


 

 

 

 

 

 

 

  <엘리자베스의 문. 프리드리히 5세가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를 위해 하루 만에 세웠단다. 정말 그랬을까?>

 

 

 

 

   <성의 지하에는 높이가 8m나 되는 대형 와인통 그로쎄스 파스가 있다. 와인을 22만 리터나 담을 수 있단다.>

 

 


 

 

                                   <시청 앞 광장에서 바라 본 하이델베르크 성. >

 

 

 

 

                 <선제후의 묘소가 있는 성령교회. 바로크양식으로 1441년에 지어졌다.>

 

 

 

 

 

 

 

 

성을 내려온 우리는 천천히 시내를 돌아다닌다. 관광객들로 가득한 하우프트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여기저기서 우리말이 자주 들린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 한국여행자들과 수없이 마주치다니 참 놀랍다.

한국여행자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거리를 산책한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노천카페로 향한다.

테이블마다 커다란 맥주잔이 시원하게 놓여있다. 와인이 놓여있던 프로방스의 노천카페와 다른 풍경이다.


 

 

 

 

 

 

 

 


우리 발걸음은 선제후박물관과 학생감옥을 거쳐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향한다.

1368년에 설립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설립자 팔츠 선제후는 문맹이었지만

노벨상수상자를 7명이나 배출해낸 명문대학 하이델베르크. 그런데 대학 문이 꽁꽁 닫혀있다.

방학 중인지, 토요일 오후라 그런 건지 모르겠다. 대신 우리는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왔던

떠들썩한 분위기의 노천카페를 찾아본다. 없다. 이상하게도 학교근처는 조용하다.  


 

 

 

 

 

     <네카르 강에 놓인 카를 테오도르 다리. 현지인들은 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알테 부뤼케라고 부른단다.>

                 

 

 

 

             <다리위에는 공사를 주도한 카를 테오도르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성과 구시가지 경치가 장관이다.>


 

 

 

 

 

 


우리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 철학자의 길로 오른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수였던

헤겔과 야스퍼스를 비롯한 유명철학자들이 걸었던 길이다. 이 길은 또 괴테가 사색을

즐기며 작품구상을 했던 산책로였단다. 그러나 사색을 즐길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는

아름답지만 약간은 험한 길로 느껴진다. 어쩔 수 없는 여행의 한계다. 


 

 

 

 

 

  <철학자의 길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전경. 갑자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철학자의 길을 내려오는데 심오한 철학대신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밤을 꼬박새우고 스무 시간이 넘게 활동을 계속하기에는 우리 몸이 너무 지쳐있다.

이제, 여행의 흥분에 젖어있던 우리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보살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