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밀라노, 토리노 그리고 브리앙송
스와로브스키 수정세계를 떠난 지 1시간... 1백 키로가 넘는 속도로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알프스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웅장한 산세와 그림 같이 예쁜 집들을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말 그대로 행복가도다.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나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정말 힘들다.
결국 사진찍기를 포기하고 그냥 경치삼매경에 푹 빠지기로 한다.
경치에 취한 나는 말도 잊는다.
“에고~ 조수석에 앉은 어떤 사람은 좋겠다~”
운전하느라 제대로 경치감상을 못하는 남편이 나를 마구마구 질투한다.
“하하하~ 그러기에 누가 나보다 운전을 잘하라나?”
이탈리아로 들어서자 산간지방이 전부 포도밭이다. 이탈리아 포도주가 왜 유명한지
그 이유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알프스의 품에서 자란 포도는 더 맛있을까...
지금 우리는 이탈리아북부지방에서는 돌로미테 산군을 통과하고 있나보다.
멀리 그리고 가까이 보이는 산세가 비범하다. 산을 오를 욕심은 없다.
그냥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인스부르크를 떠난지 6시간. 밀라노가 가까워진다. 차도 막히고 밀리기 시작한다.
역시 대도시답다. 6시에 도착예정이라는 네비게이터 톰톰의 시간이 점점 늘어진다.
꽉 막힌 고속도로는 주차장 같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막히는 건지 모르겠다.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 부지런히 밀라노시내로 나간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처럼 밀라노에도 차선이 거의 없다.
운전문화도 거칠고, 거리풍경도 깔끔하지 않다. 세계적인 기업이 진출해있는 도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본사도 있는 밀라노가 왜 내 눈에는 별로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작은 도시를 좋아하는 내 여행취향 때문에 내가 밀라노를 공정한 시선으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두오모 성당이 있는 광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당연히 성당은 문이 꽁꽁 닫혔다.
차만 안 막혔어도 성당구경을 했을 텐데... 에고에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두오모광장에 서서 성당을 바라본다. 세계에서 제 4번째로 크다는
이 성당은 그냥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밀라노? 굉장했어. 두오모 광장을 지나가는데, 와~ 남자들이 전부 조지 크루니더라.
어쩜 밀라노에 그렇게 잘 생긴 남자들이 많은지...”
얼마 전에 밀라노를 다녀 온 친구가 호들갑스럽게 한 말이다.
아!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 광장에 조지 크루니가 없다.
하다못해 사돈에 팔촌들도 안 보인다. 썰렁한 성당 앞 광장에는 우리 같은 여행객보다
으슥한 곳에서 강도로 돌변할 것 같은 음침한 분위기의 남자들이 더 많이 보인다.
갑자기 광장을 천천히 걷던 우리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스칼라극장. 유럽3대 오페라극장이라는데 겉모습은 소박한 느낌이다.)
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우리는 성당을 중심으로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밀라노를 느껴본다.
아니 갈등을 한다. 내일 아침에 이 도시를 다시 한번 돌아볼까, 아니면 오늘밤에 후다닥 돌아보고 말까...
그래도 기왕 왔으니까, 내일 다시 한번 둘러보는 것이 낫겠지?
이렇게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반전이 찾아왔다.
우리 차를 세워둔 주차장을 찾는 길이 꼬인 것이다.
주차장 근처 길은 복잡했지만 내 눈에는 익숙했다. 주차할 곳을 찾느라 이 근처를 뱅글뱅글
몇 바퀴나 돈 덕분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바로 주차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지도를 보던 남편이 오른쪽으로 가야 주자창이 나온단다. 어? 그런가?
지도 한 장 들고 어디든 못 찾아가는 곳이 없는 남편의 실력을 인정하는지라
의심 없이 남편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삼십분을 가도 주차장이 안 나온다.
어두운 밀라노의 밤길, 골목길을 걷는 우리는 공포에 젖어든다. 슬슬 무릎도 아프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강도라도 나타날 것 같은 피해망상에 발걸음이 후들후들 떨린다.
결국 그 주변을 한 바퀴 크게 돌고 나서야 나의 길찾기가 정확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부인 말을 잘 들었어야지! 오죽하면 부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나왔겠어? 앞으로 내 말 잘 들을 거라고 맹세해. 얼른!! ”
이렇게 쫑알쫑알 남편에게 분풀이를 했지만 주차장을 찾으며 어찌나 떨었던지
밀라노에 정이 뚝 떨어졌다.(물론 밀라노 탓은 아니다)
안도의 숨을 쉬며 차에 오른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내일의 계획을 수정한다.
우리에게 밀라노는 다시없다. 내일, 아침을 먹는 대로 토리노로 출발한다.
6월26일 여행 마지막 날...
오늘 우리는 토리노를 거쳐서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로 간다.
오늘의 과제는 무사히 집으로 귀환하는 일. 알프스를 넘어서 집으로 가는 길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밀라노 호텔을 떠나는 순간부터 마음이 들뜬다.
처음부터 토리노는 점만 찍고 지나갈 생각이었다. 1시간 정도만 휘리릭 둘러보고
서둘러 길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래서 토리노에게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
토리노가 동계올림픽이 열린 도시라는 것밖에 아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토리노가 너무 잘 생겼다. 계획도시처럼 좍좍 뻗은 도시는 밀라노보다
훨씬 매력적인 느낌이다. 이곳이 사보이왕국의 수도였고, 한때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토리노를 만날 시간이 넉넉지 않은 현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정보센터에서 토리노지도를 산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토리노를 돌아본다.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운 곳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1시간예정이었던 도시 방문은 2시간으로 늘어났지만 아쉬움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토리노를 떠나 알프스로 접어든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국경을 이루는 알프스의 산세도 웅장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계속 감탄사를 남발한다.
이렇게 멋진 길을 달릴 수 있다니 우리는 정말 복도 많다.
토리노를 떠난 지 2시간. 우리는 드디어 이탈리아국경을 넘는다. 아듀~ 이탈리아.
프랑스 첫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프랑스 오뜨 알프스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 브리앙송으로 들어선다.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한 브리앙송 구시가지는 오래된 놋그릇을 반질반질 닦아놓은 느낌이다.
마침 마을 성당에서는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돌길을 따라서
산책을 다니다보니 브리앙송이 더 정겹게 다가온다.
“빨리 가자~ 우리 이러다 오늘 안에 집에 못 가~”
남편의 재촉이 이어진다.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한데, 나는 브리앙송을
떠나고 싶지 않다. 작고 아름다운 마을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취향도 참 못 말린다.
브리앙송에서 우리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면 네 시간 반.
그런데 멋진 경치가 자꾸만 우리 발목을 잡는다. 감동의 물결이다.
차를 세우고, 풍경 속으로 푹 빠지기를 벌써 몇 번째...
이러다가 정말 오늘 안에 집에 들어갈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다.
여행후기
우리는 집을 떠난 지 8일 만에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다. 남편은 이번 여행 때문에
6개월은 늙어버린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는 무사귀환기념 축배를 든다. 그리고 다시 우리들의 여행을 추억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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